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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과 비평

[미학과 비평] 텅 빈 눈망울 깨우기- 비주얼 리터러시 훈련을 위한 시서화 수행론

by 웹진수이제 2026. 4. 22.

 

텅 빈 눈망울 깨우기

- 비주얼 리터러시 훈련을 위한 시서화 수행론

 

신현경 (눈메시각연구소)

 

근대와 현대 그리고 전통 시각

 근대 이후에 유럽 백인 남성 중심의 데카르트적 관점이 굳건히 구축되었다. 그런데 이 관점은 이들로부터 소외된 다른 관점을 틀린 관점이라고 규정하여 왜곡해 버렸다. 사람 중심에서 자연을, 이성 중심에서 감성을, 남성 중심에서 여성을, 그리고 자민족 중심에서 다른 민족을 분리하고 타자화하여 계몽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데카르트적 관점의 오만은 결국 1, 2차 대전으로 치달았다. 이들은 타자들을 식민화하여, 제국주의적 횡포는 극에 달하였다. 결국 서양화로 돼 버린 근대화는 세계화에 이르러 전세계적으로 병적인 문명을 낳았다.

 도널드 데이비드 호프만의 『시각적 지능: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와 존 버거의 『여러 가지 보는 방법들』에 따르면, 시각이 정체성이자 사고이며 믿음의 토대다. 시각을 잃으면 정체성을 잃는 것과 같다. 근대화로 인하여 우리는 전통적 사고 방식을 잃고 데카르트적 관점에 빠져 전통 시각을 왜곡, 무시하게 되었다. 잃어버린 전통은 그림 <사이에서>처럼 대도심 속에서 절이 안 보이는 세계로 표현되고 있다.

 근대에 들어와 생각하는 이성을 강조하는 이런 관점은 현대의 좌뇌적 사회제도 안에서 문자 위주 교육과 논리 중심의 좌뇌 시각을 우위에 두고, 기능주의와 결과 중심으로 평가하여, 논리적 기능을 담당하는 좌뇌의 편재화를 가중시켰다. 이처럼 사회제도와 교육을 통하여 우뇌적 감성을 억압하였다. 우뇌 시각의 기능도 이해할 수 없어 그 기능과 더불어 잠재력과 창의성을 말살하였다. 이에 따라 좌우뇌의 균형을 잃어버리고 자기 내면을 소외하고 서로를 소외하는 문제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까지 병들게 하였다.

 

신현경. 사이에서. 20x29cm. 드로잉. 2012.

 

 특히 시각은 외부에서 오감으로 받아들이는 정보의 80~90%를 차지한다. 이 사실은 시각적 소양을 말하는 비주얼 리터러시의 개발이 현 교육의 시행착오를 바로잡고 교육적 효과를 증대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존 데베스가 『비주얼 리터러시의 직조기』에서 비주얼 리터러시를 이미지를 보고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처음으로 정의하였다. 이 능력 키우기는 미술교육에서 담당해야 한다.

 이러한 근대 좌뇌 시각 중시에 반하여 내세울 수 있는 우리의 전통 시각은 ‘눈망울’이다. 눈망울은 이미지의 가시 세계를 보는 눈과 그 너머 상상력의 비가시세계까지 연결하여 보는 망울의 합성어다. 좌뇌 시각과 우뇌 시각을 조화롭게 활용하는 시각이다. 근대 데카르트 관점에 따라 이 눈망울의 세계를 잃고, 눈에 보이는 세계만을 진실이라고 믿는 좌뇌 중심의 시각이 득세하게 되었다. 한편으론 근대의 이성적 사고와 언어의 눈으로 보고, 다른 한편으로는 보이지 않는 신의 세계만을 믿는 기독교의 중세적 믿음으로 보아, 두 세계가 분리되었다. 그리하여 눈망울의 세계를 스스로 무시하니 텅 비어 버린 것이다.

 근대 교육을 수용하기 이전인 동아시아 전통교육은 서양의 이원론적 세계가 아니라 일원론적 세계관 안에서 문인들의 정신과 물질, 몸과 마음, 자연과 인간이 마땅히 합일되어 있었다. 문인들을 위한 전통 교육에서 시서화는 교육방법의 기초로 글쓰기/철학/문학과 그리기/미술의 융합이었다. 거기에 붓은 한 획에서 쓰기와 칠하기의 예술적 표현이 가능하다. 전통교육에서 시서화는 비주얼 리터러시로서 예술의 역할을 한다. 이는 우뇌 시각의 훈련에 따르는 합일성과 창의성을 훈련하는 교육의 기초였다. 눈망울의 좌뇌와 우뇌를 조화롭게 활용하는 시각 훈련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기초교육으로 미술교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신현경, 오리엔탈리즘 그리고 되돌려보기, (20x20cm)X2. 드로잉. 2003

 

 이와 같이 전통 교육에 근대 좌뇌 시각의 편재화를 극복,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현대 물질주의와 이기주의로 점철되어 있는 시대적 상황에 현대 교육 제도에서 전통 교육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전통 교육에서 예술의 역할이 철학, 문학과는 분리되어 정신은 빠지고 파편화되어, 특히 지금의 시서화는 시는 시, 글씨는 글씨, 그림은 그림으로 분리되었다. 미술교육에서 그림은 합일적 특성을 잃은 채 미술의 형식적 기능만 남게 되었다. 문자교육만을 강조한 시각 훈련은 그 교육적 효과를 제대로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잃어버린 전통을 회복하고, 잃어버린 눈망울을 되찾아야 할 때이다. 전통 교육적 방법론은 오래된 미래로서 현대교육에서 좌뇌 편측화에 따르는 문제를 우뇌적 시각으로 보완해야 하는 과제를 떠맡아야 한다.

 

전통 문인교육의 시서화론에서 우뇌 시각적 특성

문인들은 일원적 세계관 안에서 서화동원 즉 글과 그림이 한 원천으로 보았기에 철학과 문학, 예술이 공존하는 기반을갖추고 있었다. 이런 세계관은 시서화의 교육적 기능을 다음 네 가지 시서화론을 중심으로 우뇌 시각적 특성을 살피고 있다.

 첫째, 서화 동원론에 기반한 시서화 일률론(一律論)이다. 시서화는 글쓰기의 언어적 요소와 시각적 요소가 가미된 서예이자 그림이었다. 이 시서화는 사대부의 문인화와 선승들의 선화를 포함한다. 그림으로서의 畵와 그리기로서의 畵와 글씨로서의 書 에서의 기능을 동일시하여 畵와 劃을 혼용해서 쓰기도 한다. 유홍준은 『고서화도 록』 7권 「유희삼매, 선비의 예술과 선비 취미」에서 그림 위에 직접 제시를 써서 시서화로 표현하는가 하면 화평을 직접 그림에쓰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조선 전기 성간(단종~세조 때의 문신, 시인, 1427~56) 도 강희안에게 부치는 <기강경우시(寄姜景 愚詩)>에서 '시는 소리 없는 그림이고 그림은 소리 없는 시로 예로부터 시화는 하나였다.'고 하여 소식의 시서화일률론을 이어받고 있다. 허영환 역시 『중국화론』에서 심주의 <야좌도>에 쓴 야좌기에서 '심주가 시각적인 상을 통하여 사고하도록 훈련된 화가이자 시인이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문인들의 시서화 일률론은 글쓰기의 좌뇌 시각과 그리기의 우뇌 시각을 조화롭게 활용하였음을 말해 준다.

 

심주, <야좌도>, 출처: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

 

 

 둘째, 가시적 자연 속의 사물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이나 내면세계를 상징적 의미를 통하여 표현하는 것이 의상론(意象論)이고, 이를 그림으로 전달함이 사의론(寫意論)이다. 허영환은 『중국화론』에서 회화란대상으로부터 미적 감정 혹은 내부로부터 생기는 미적 충동을 선과 색을 매개로 객관적이고 평면적으로 현상화함과 동시에, 그 화면의 필치, 색채, 구도에 있어서 반드시 예술적 진리를 충분히 상징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정의한다. 이러한 의상론에서 그림의 상징성은 가시 세계와 비가시 세계를 합일적으로 연결한다. 그림의 역할은 크게 재현론과 상징론으로 볼 수 있다. 동양화에 반해 서양화는 플라톤이 물질과 정신을 이분한 이래로 가시 세계이건 비가시 세계이건 재현론으 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동양화는 근대 좌뇌 시각만으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필자가 「포스트모더니즘의 포월로서 시서화 수행론에서의 상징성의 역할」 에서도 썼다시피 좌뇌적 시각과는 다른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일률론의 시각적 기능과 더불어 의상론에서 상징성(의미부여)의 역할은시각적 자기표현으로 내면의 시각화 기능을 한다. 이런 기능과 역할은 현대에 와서 잃어버린 정체성 문제에 따르는 자존감을 훈련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억눌린 감성을 치유하고 객관화에 이르는 자기 치유적 과정이 되게 한다. 결국 의상론은 가시와 비가시 두 세계뿐 아니라 몸과 마음을 분리하지 않고 연결하는 우뇌 시각적 특성을 말한다.

 

타카시마 야주로 (高島野十郎) <감>. 출처: http://hemiola.blog75.fc2.com/?tag=高島野十郎

 

 

 셋째, 시서화의 유희 삼매론이다. 원말 4대가인 황공망은 산수화를 그리는 것은 양신으로 보고, 산수화를 그리는 것은 유희를 위함이라면서 그 과정의 서정적이고 자적한 작용을 말하였다. 특히 유홍준은 조선 후기 한국 선비들의 예술과 흥취를 유희삼매로 풀었다. 이와 같이 문인들이 시서화를 치면서 자기의 내면을 종이 위에 표현, 형상화하는 자기 치유적 과정으로서의 미술로 보는 유희 삼매는 우뇌 시각적 특성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석도의 일화론(一畵論) 또는 일획론이다. 첫 획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만 가지 형상과 우주의 원리를 담은 출발점이며, 창작자는 마음을 비우고 획을 시작해야 한다. 한 획을 시서화 일률로써 시작하여 하나의 선을 긋는다, 김용옥은 『석도화론』에서 석도가 친다는 행위를 무에서 생명이 발생하는 우주 창조적 행위로 보고 있다고 풀이하였다. 일화론에서 첫 획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도()와 자연의 생명력을 담은 근원적 행위이다. 무위에서 모든 것을 연결하며 그림을 살아있게 하는 생명성을 말한다. 이는 사혁이 <고화품록>에서 화육법의 제일 법칙을 기운생동으로 본 것과 마찬가지다.

 석도 역시 18장 중에 1장이 일획론으로 그림의 생명성을 말하고 기법을 논하며 마지막에 자신의 예술과 수행이 어떤 원리에 근거한다는 선언을 한다. 이는일획으로 창조되는 세계가 자아를 발현하며 생기 있는 삶을 살아가는 총체적인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드러나는 그림의 생명성은 그림 그리는 유희삼매의 과정에서 몸과 마음의 합일성이 드러나는 신명이다. 텅빈 눈망울로 죽어가는 삶이 아니다. 일획론의 생명성은 작업 과정에 합일하며 드러나는 무위적 수행으로, 손으로 하는 명상이다. 우뇌 시각을 활용할 때 드러나는 기능을 말한다.

 전통교육의 시서화를 뒷받침하는 시서화론은 시서화에 계승되어 온 기능이 총체성을 바탕으로 시서화 작업 과정에서 표현과 명상적 기능을 하며 몸과 마음을 합일하는 수련적, 수행적 기능을 한다. 그 과정 중에 우뇌 시각은 훈련되고, 문인들의 합일적 인식은 체화된 사고로서 몸과 마음을 분리하지 않는 우뇌 시각의 통합적 실천을 이끈다.

 시서화 수행론은 시서화 삼절로서 시서화 일률론은 다시 사람까지 연결하여 시서화인 일률로 이어져 지행합일을 향한다. ··화는 서로 다른 예술이지만 하나의 원리로 이어지고, 그 원리는 인간의 삶과 인격까지 연결된다. 따라서 예술수행은 곧 자기 수양이다. 문인들의 삶에 의한, 삶을 위한, 삶의 실천학문이었다. 그래서 시서화인 일률론이다. 시서화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스스로 제작하기 때문에 전인적 작업의 소산이다. 우뇌 시각을 훈련하는 시서화 삼절적 수행이라 는 실천과제가 남는다.

 

목계 <육시도>(여섯 개의 감), 13세기. 출처: 브런치 https://brunch.co.kr/@hystoire/14

 

전통교육의 재정립으로서 시서화론의 교육적 기능

 전통적으로 문인들은 그림과 글을 같은 원류로 보고, 분리하지 않으면서 시서화에 걸친 문자 훈련과 시각 훈련을 동시에 하여 좌우뇌의 조화로운 훈련을 받았다. 전통교육의 시서화 수행론은 시서화 일률과 의미의 상징성 그리고 일획의 생명성과 연결성을 특성으로 비주얼 리터러시를 훈련하는 것으로서 일반 교육에 속한다.현대 교육에서 비주얼 리터러시와 목적과 방법이 같다.

 전통 교육으로서 시서화 수행은 일원론적 세계관 안에서 동양철학을 기반으로 통합적인 기초 역할을 하였다. 서양의 이원론과 매우 다르다. 시서화 수행은 작업 과정에서 발달하는 합일성과 우뇌의 시각적 인식에 대한 훈련이다. 비주얼 리터러시로서의 아트의 역할이다. 이는 우뇌 시각을 훈련할 수 있어 현대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자,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교육의 기초이기도 하였다. 일화론적 세계에서 이미 이성과 감성이 분리되지 않은 좌뇌 시각적 특성과 우뇌 시각적 특성을 조화롭게 훈련할 수 있는 교육론이 내재되어 있다. 이는 우뇌 시각의 훈련과 더불어 자기표현, 정체성, 비평적 관점뿐만이 아니라 우뇌적 시각 훈련의 변화창조를 훈련하는 교육의 기초로 가치가 있다.

 시각의 자기중심적 한계는 비주얼 리터러시의 훈련을 통하여 그 극복이 가능하다. 좌뇌 편측화에 따르는 우뇌 시각의 쇠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일 뿐 아니라,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하는 현대 교육의 대안이다. 그리고 현대교육이 요구하고 있는 파편화된 학문 간의 통섭, 우뇌의 창의력과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는 보고이다. 시서화 수행의 내용과 형식적인 요소들이 오늘날 시각문화 예술교육의 지표가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 교육이 좌뇌에 치우쳐 오히려 균형을 잃었고 우뇌 시각을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현대에 살아있는 문화 안에서 미술교육이 특히 전통교육의 시서화 수행을 되살려 비주얼 리터러시로서 새로운 역할을 해야 그 기능이 다시 살아난다. 비주얼 리터러시로서의 아트, 시서화 수행은 본 것을 그리는 일은 기초 교양 교과로서 기본적인 필수 교과가 되어야 한다. 누구나 배우면 글을 쓰고 읽을 줄 알듯이, 누구나 배우면 그림을 그리고 표현할 수 있다. 이는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이자 의무이다. 오래된 미래로서 현대 기초교육으로 비주얼 리터러시로서 시서화 수행이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