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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철학자순례] 은유는 어떻게 삶을 지배하는가?

by 웹진수이제 2026. 2. 11.

 

은유는 어떻게 삶을 지배하는가? 

 

나익주 (전남대)

 

해임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말 선포한 비상계엄을 둘러싸고 한쪽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면서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이런 갈등은 물리적 전쟁은 아니지만 은유적 전쟁(즉, 논쟁)이다. 이 은유적 전쟁의 목표는 영토를 더 많이 차지하자는 데 있지 않다. 한국 사회 내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고 주도권을 쥐기 위한 것이다. 이 전쟁의 수단은 물리적 무기(예: 폭탄, 총, 칼)가 아니라, 상대의 주장을 제압하기 위한 더 정교한 논증이다. 

 

개념 전쟁과 프레임 전쟁, 은유 전쟁 

이 은유적 전쟁에서는 ‘자유’ ‘민주(주의)’ ‘정의’ ‘평등’ ‘공정’ ‘안전’ ‘책임’ ‘차별’ ‘복지’ ‘과세’ 등의 개념에 대한 해석을 두고 서로 다툰다. 사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서 벌어졌던 모든 이념적 대결, 예컨대 ‘친일 청산 대 용공 척결’, ‘좌파 대 우파’, ‘독재 대 민주’ ‘친북 대 반북(종북)’ ‘수꼴 대 좌빨’ 등 모든 대립은 다 이러한 개념의 해석을 둘러싼 전쟁이었다. 어떤 개념의 해석이든 다 프레임에 토대를 두고 있다. 예컨대, 세금 인상에 대해 보수는 개인 자유의 침해라고 해석하여 세금 폭탄이라 이름을 짓고, 진보는 세금을 배고픔을 비롯한 온갖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위한 공동의 자산으로 본다. 

 

은유는 시인의 전유물인가?: ‘은유법’에서 ‘개념적 은유’로 

은유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두 방식이 있다.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이래로 2천 년 이상 동안 은유에 대한 정설인데 고전적인 은유 이론이다. 다른 하나는 이 정설에 전면적으로 도전하는 인지 언어학의 개념적 은유 이론이다. 고전적 개념을 따르면, 은유는 일상의 ‘정상적인’ 언어 사용이 아니라 시적·수사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일탈적인 언어 표현이다. 천재의 징표이며 시인이나 능변가의 전유물이다. 반면 인지 언어학은 은유가 단지 언어적 차원이 아니라 개념적 차원에 있으며 사고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지 기제라고 본다. 

은유를 사고 체계의 핵심적 부분으로 보는 관점은 1980년에 나온 인지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와 언어철학자 마크 존슨의 저서 『삶으로서 은유』에서 싹텄다. 이 책은 사고 과정이 거의 다 은유적이며 따라서 사용하는 개념도 당연히 은유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많은 언어적 사례와 비언어적 사례(예: 예술, 영화, 의례 등)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의 새로운 학설을 ‘개념적 은유 이론’이라 할 수 있다. 

 

고전적인 은유 이론보다 개념적 은유 이론이 더 타당한 것 같다. 은유가 시인이나 능변가들만의 전유물이라면, 탁월한 상상력이나 유추 능력을 지니지 않은 보통 언어 사용자들은 천재들의 창조적이고 일탈적 언어 사용 즉 은유적인 표현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도 특별히 난해한 시가 아니라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시를 이해하고 즐겨 읽으며 명연설을 듣는 순간 바로 그 의미를 파악한다. 

 

또한 은유는 시의 한 구절이나 연설의 문구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 표현에도 널리 퍼져 있다. 예컨대, 신문이나 방송 뉴스의 제목에 ‘세금 폭탄’ ‘황혼 이혼 급증’ ‘명품 교육 도시’ ‘교육의 질 관리’ ‘미국의 대북한 코피 터뜨리기 작전’ 등도 은유다. ‘통일은 대박’, ‘엄격한 수질 관리, 다들 만족할 거예요’를 생각해 보자. 이들은 다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된 표현이다. 

 

화자로서든 청자로서든 그들은 이러한 표현을 생성하거나 이해하는 데 별다른 의식적 노력 없이 거의 자동적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은유가 특별한 언어 사용 능력을 지닌 천재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모든 언어 사용자에게 중요한 사고 과정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은유는 인지적 무의식이다. 

 

대법원 법정. 출처: https://www.lawtimes.co.kr/news/180413

‘개념적 은유’ 대 ‘은유적 언어 표현’ 

은유를 언어적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 개념을 이해하고 인지하는 사고 과정의 문제로 보려면, 개념적 은유를 은유적인 표현과 구별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은유의 고전적 이론에 비해, 개념적 은유 이론은 어떤 장점이 있는가? 아래와 같은 축자적이지 않은 언어 표현을 어떻게 설명하는가를 검토해 보면 이 질문의 답은 분명히 드러난다. 

 

교육을 상품화하는 대학구조 조정 중단하라! 

바이오 융합 분야를 중심으로 한 특성화를 통해 명품 대학으로 육성할 것

특성화된 명품 학급을 운영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 

교사도 브랜드로 수업 잘 하는 교사의 자세 등 명품 수업 구현을 위한 교사 마인드

철저하게 교육공급자 중심으로 짜인 우리 교육의 틀을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하는 기본 논리 

은유의 소재를 단지 언어의 문제로 보는 고전적인 이론에 따르면, 위의 예는 아무런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지 않은 각각 다른 여덟 개의 일탈적인 표현일 뿐이다. 구체적으로 위의 표현에 사용된 ‘상품(화)’ ‘명품’ ‘브랜드’ ‘공급자’ ‘수요자’ 등의 의미적 다의성은 서로 연결해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라, 각각이 서로 무관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탈적인 언어 사용이 된다. 반면에 개념적 은유 이론에서는 이러한 은유적인 표현이 ‘교육’ 개념(목표 영역)을 ‘상거래’ 개념(원천 영역)을 통해 은유적으로 이해하는 사고 과정―즉 ‘교육은 상거래 은유’―의 언어적 발현으로 의미상 체계적으로 연결된다. 개념적 은유에서 원천 영역은 목표 영역을 이해하기 위한 마음속의 창(즉 프레임) 역할을 한다. 

 

요약하면, 위에서 제시된 여러 개별 표현들은 축자적이지 않은 의미를 전달하며, 그 기저에는 다 하나의 개념적 은유가 깔려 있다. 바로 교육은 상거래 은유이다. 개념적 은유는 결코 단순히 언어적 표현이 아니며, 목표 영역이라 불리는 어떤 개념(예: 교육)을 원천 영역이라 불리는 다른 어떤 개념(예: 상거래)을 통해서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이러한 두 개념 영역 사이의 일련의 체계적인 대응으로 구성된다. 개념적 은유 ‘A는 B(이다’는 이 체계적인 대응을 압축적으로 나타낸 표기상의 약정이지 결코 언어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예컨대, 교육은 상거래는 언어 표현이 아니며, 교육 개념의 요소와 상거래 개념의 요소 사이의 대응을 대신하는 약정이다. 

 

교육 (목표영역) 상거래 (원천영역)  교육 (목표영역)  상거래 (원천영역) 
국가/사회/학부모(학생) 수요자/구매자  우수 교사  인증 제품 
학생 선발 구매 행위 성적 우수 학생 명품(인증상품) 
대학 (기업을 위한) 중간상인 성적 비우수 학생   불량상품 
중고교 (고교/대학을 위한) 중간상인 학생의 자질 (품성, 창의력)  상품의 특성

<표 1> 교육은 상거래은유의 체계적 대응 

 

개념적 은유의 비언어적 발현: 예술과 문화, 의례 

은유가 풍부한 시적 상상력과 수사적 효과를 위한 도구를 넘어 사고와 인지 과정의 필수적인 부분이라면, 언어생활 이외의 비언어적 영역에도 당연히 작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념적 은유 이론은 순환적인 논증에 그칠 것이다. 물론 은유는 언어적인 방식뿐만 아니라, 비언어적인 방식으로도 다양한 영역에서 드러난다. 영화나 풍자만화, 그림, 조각, 건축 등에 발현된 은유의 사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영화에서는 정사 장면의 배경으로 눈보라와 강풍이 몰아치는 겨울 벌판이 아니라 벽난로의 강렬한 불길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성욕은 불’이라는 개념적 은유의 비언어적 발현이다. 이 은유에서 연인들은 불을 피우는 사람, 그들의 성욕은 강력한 불, 성교는 불 피우기에 대응한다. 한편 조각 작품에서는 연인 관계를 표현할 때 멀리 떼어 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붙여놓거나 매우 가깝게 배치한다. 이러한 기법도 역시 개념적 은유인 친밀함은 가까움이란 은유의 비언어적 발현이다. 또 다른 예로, 법정의 좌석 배치를 떠올려 보라. 판사의 좌석이 피고의 좌석보다 높은 까닭은, 권력은 위, 권력 부재는 아래라는 개념적 은유가 있기 때문이다. 

 

은유는 어떻게 삶을 지배하는가?: 부각과 은폐 

교육을 어떤 원천 개념 영역(예: 식물 재배, 여행, 상거래, 전쟁 등)에 따라 이해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은 아주 큰 영향을 받는다. 각 은유가 해당 개념의 상이한 측면을 부각하고 은폐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교육은 식물 재배’ 은유는 학생이 전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과 정원사로서 교사의 특성을 부각한다. 교육은 여행 은유는 학생의 전인적 성장이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교사와 학생이 함께 노력하는 과정과 안내자로서 교사의 역할을 부각한다. 하지만 교육에 스며든 시장주의적인 요소는 이 두 은유에서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한편, 교육은 상거래 은유는 최적의 교육을 받을 학생의 선택 권리와 그러한 교육을 제공할 학교와 교사의 책임, 그리고 학생/학부모와 학생/학교 관계의 상거래 측면을 부각한다. 1995년의 5·31 교육개혁안 발표 이래로 교육에 관한 기사나 공문서에서 흔히 ‘교육 수요자/소비자’가 ‘학생’이나 ‘학부모’를 대신하고 ‘교육 공급자’가 ‘학교’나 ‘교사’를 대신한다. 또한 ‘학부모 서비스’ ‘교육 소비자 선택권 강화’ ‘교육 소비자의 요구 반영’ ‘교육의 질 관리 강화’ 등의 표현도 교육 활동을 묘사하는 글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우리의 사고방식인 ‘교육은 상거래’ 은유의 언어적 발현이다. 

 

이 ‘교육은 상거래’ 은유는 현재 언어생활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품질 좋은 상품’인 우수한 선생님을 구매하기 위해 물불을 안 가리고, 입시 경쟁의 최종 목적지인 이른바 ‘스카이대’에 합격하려고 천문학적인 사교육비를 기꺼이 부담하려 한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교육 수요자로서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시행 중인 ‘담임교사 선택제도’나 ‘교원 평가제’도 역시 이 은유의 비언어적 발현이다. 이러한 제도에서 교사들은 학생들이 구매할 수 있는 상품‘에 해당하고 교사들이 학생들의 선택을 위해 미리 제시하는 학급 운영 방침은 일종의 제품 설명서에 대응한다. 

 

교육을 상거래의 측면에서 이해하는 이 은유적 사고는 현재 거부하기 힘들 정도로 깊숙이 내면화되어 있다. 그 결과 교사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지원하는 정원사나 안내자라기보다 상품 판매자로 자각하기 쉽게 된다. 결국 학생들은 전인적 성장이나 상생, 배려, 나눔의 가치보다 최고 품질의 교육 상품 구매를 통한 입시 경쟁에서의 승리만을 최고선으로 여길 것이다. 

 

【서울=뉴시스】 29일 오후 서울 소공동에서 열린 한미 FTA저지 대궐기 기습시위에 시위대가 피켓을 들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 이명근 기자 myung@newsis.com

죽음을 부르는 은유: 전쟁은 주먹다짐, 전쟁은 의료 

은유는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극한에 이르면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미국과 북한이 서로를 심한 말로 비난하던 십여 년 전, 미국의 언론은 북한의 굴복을 강요하며 북한에 대한 선제적 군사 조치를 ‘코피 터뜨리기 작전’이라 이름 붙였다. 이러한 보도는 전쟁은 주먹다짐이란 은유를 끌어들인다. 전쟁을, 코피를 흘리면 무조건 패배를 인정하는 어린이들의 골목 주먹다짐으로 희화화해 전쟁의 참상을 은폐한다. 이 은유에 따르면, 세계는 한 마을이고 국가는 사람이며, 특히 미국은 착한 골목대장이고 북한은 악동이다. 

 

전쟁을 의료로 보는 은유도 죽음을 부를 수 있다. ‘중, 북핵 시설 외과적 수술 묵인할 수도’나 ‘미, 북 미사일 시설에 예방적 선제 타격?’과 같은 기사 제목을 보자. 여기서 은유는 의료를 살상을 통한 승리로 특성화되는 전쟁에 투영한다. 그 결과 전쟁의 파괴적 속성을 은폐하고 오히려 어떤 전쟁은 유익할 수도 있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이 은유에서는 국가는 사람이며, 특히 미국은 (선한) 의사이고 북한은 중환자이고, 북핵 시설은 세균으로 오염된 상처다. 

 

이러한 은유는 어떤 측면은 은폐하고 어떤 다른 측면은 부각함으로써 실재를 심히 왜곡한다. 한반도와 주변국, 미국 본토에 대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부각할 때는 북한은 잔인한 악당이다. 반면에 미국의 탁월한 군사력과 전쟁 수행력을 강조하고 악마화된 북한의 군사력을 깎아내리며 북한의 완전한 굴복을 강요한다. 

 

이러한 은유는 정말로 위험하고 우리를 죽일 수 있다. 바로 실재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쟁은 결코 먼저 코피를 흘린 아이가 바로 패배를 인정하는 골목의 주먹다짐이 아니다. 미국의 선제 공습에도 온전하게 남아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이 단 한발이라도 남아 있다면 서울이 초토화될 수 있다. 또한 전쟁은 남한과 북한, 미국 어느 나라에도 결코 외과 수술처럼 유익할 수 없다. 남북을 가릴 것 없이 처참할 것이다. 미국은 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한 영웅이 결코 아니다. 

 

이처럼 은유는 단지 시나 연설의 수사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천재적인 시인들이나 능변가들이 구사하는 언어의 일탈적인 쓰임이 아니다. 개념 체계가 본성상 은유적이며 따라서 은유는 사고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지 기제이다. 이러한 개념적 은유는 단지 언어적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삶의 모든 영역(예: 행위, 의사결정)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서 우리 삶을 지배하며, 심지어는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이런 은유에 무심히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를 평안케 할 은유가 무엇인지 늘 성찰해야 한다.

 

백악관, '미국의 대북 코피작전(Bloody Nose)은 언론이 만든 허구'. 출처: https://blo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