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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철학 비평] 인공지능이 소설을 쓰는 시대, 작가의 얼굴은 어디에 남는가

by 웹진수이제 2026. 4. 22.

 

 

인공지능이 소설을 쓰는 시대, 작가의 얼굴은 어디에 남는가[각주:1]       

    김소영(부산대학교)

 

 어떤 글을 다 읽고 나면 밑바닥에서부터 차올라오는 어떤 감흥, 그 글을 펼치기 이전의 나와는 달라진 신비로운 변용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감흥은 흥미로운 플롯 또는 매력적인 캐릭터에서 비롯된 감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오래 머무는 여운은 종종 "이 글을 쓴 이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라는 근원적 응시에서 나오는 것 같다. 책장을 덮은 후에도 작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그 감각. 우리는 사실 텍스트만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누군가의 세계관과 그에 따른 고유한 실재를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령 작가의 등장: 문학 제도를 통과한 인공지능

 

 그런데 지금 그 '누군가'의 자리에 인공지능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미 거대언어모델은 이야기 창작의 기능적 요건을 상당 부분 충족하고 있다. 그렇다면 쓰는 주체가 인간이냐 인공지능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 이 질문이 가장 구체적으로 불거진 곳은 일본이다.

 물론 인공지능이 소설을 쓰는 시대가 갑자기 도래한 것은 아니다. 1953년 크리스토퍼 스트레이치가 개발한 러브레터 생성기는 고정된 어휘와 문장 구조를 조합하여 최초의 컴퓨터 텍스트를 만들어냈다. 이후 1966년 조지프 와이젠바움의 일라이자는 인간의 질문에 열쇠말에 맞춰  쌍방향 대화의 길을 닦았고, 1976년 제임스 미한의 ‘테일스핀(Tale-Spin)’은 캐릭터의 목표와 계획에 따라 이야기를 능동적으로 구성하기 시작했다.

 문학을 향한 본격 도전은 1984년 윌리엄 체임벌린 등이 개발한 렉터에서 나타난다. 렉터는 약 120페이지 분량의 산문・시를 생성하여 컴퓨터가 쓴 최초의 책으로 기록되었다. 이어 2016년 인공지능 벤자민이 쓴 대본으로 제작된 단편 영화 <선스프링>에 이르러 기술은, 단순한 템플릿 조합을 넘어 복잡한 서사 구조를 시험하는 단계로 진입했다. 수십 년간 축적된 이 기술적 동력은 2016년 일본의 호시 신이치상에서 인공지능 작품이 1차 심사를 통과하면서 얼굴 없는 작가의 등장을 가시화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세상을 뒤흔든 직후의 일이었다.

 

알고리즘이 써 내려간 수학적 서사: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

 

 호시 신이치상은 일본 과학소설 문학의 거장 호시 신이치(1926~1997)를 기념해 2013년에 창설되었다. “이과적 발상력”을 핵심 심사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첫 회부터 “인공지능 등” 비인간적 존재도 응모를 허용해 왔다. 나고야대학 연구팀의 인공지능이 쓴 초단편 소설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이하 『컴소날』)의 1차 통과는 당시 인공 지능계의 커다란 성과였다.

이 소설은 인간적 감정과 자유의지를 가진 세 대의 인공지능이 각자 피보나치 수열, 소수, 하샤드 수를 소설로 써내려가는 메타픽션이다. 수학적 패턴을 서사로 삼는 발상은 참신했지만, 이야기의 치밀성과 캐릭터 조형의 깊이는 미숙했다. 그럼에도 『컴소날』이 심사위원들에게 소설로 수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1만 자 이내의 짧은 형식과 이과적 발상력이라는 심사 기준에 전략적으로 잘 맞물린 결과였다. 인공지능가 문학적 개연성을 장악해서가 아니라 입력된 규칙을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컴퓨터 고유의 속성, 절차성이 초단편이라는 형식의 허용치 안에서 제 기능을 발휘한 덕분이었다.

 『컴소날』은 최종심사까지 오르지는 못했지만, 필명인 유우레이 라이타(유령 작가)가 암시하듯, 이 사건은 문학 창작의 본질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얼굴 없는 존재가 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면, 작가의 정체성이나 개성은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제13회 호시 신이치상 공모 포스터.

 

배제 대신 제도화: 일본 문학계의 선택

 

 인공지능이 쏘아 올린 문학적 주체의 위기 앞에서 일본 문학계는 배제 대신 제도적 포섭을 택했다. 2022년 인공지능 사용 필수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인공지능 노벨리스트 문학상이 탄생했고, 호시 신이치상 역시 인공지능 사용에 관한 명확한 지침을 마련했다.

 2022년 만들어진 인공지능 노벨리스트 문학상'은 인공지능 소설 생성 도구인 인공지능 노벨리스트를 활용한 작품만 응모할 수 있도록 했다. 사용자가 문장 몇 줄만 입력하면 이어지는 텍스트를 인공지능가 자동으로 생성한다. 누구나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인공지능 활용에 대한 감상과 논평을 함께 제출하도록 하고 있어, 인공지능 필수이지만 동시에 인공지능와의 협업을 요구하는 문학상이기도 하다.

 2023년부터 적용된 호시 신이치상의 지침 역시 투명성과 책임에 무게를 둔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인공지능에 맡겼는지, 즉 사용한 인공지능명, 프롬프트 원문, 생성 과정 데이터의 보존과 제출이 의무화되었다. 인공지능가 생성한 문장의 단순 복사・붙여넣기는 금지되었으며, 사람 작가가 반드시 편집・가필・재구성 과정을 거쳐 창작적 기여를 보태야 한다. 인공지능를 도구로 인정하되, 작가의 개입을 의무화함으로써 작가의 책임과 주체성을 문학의 최후 보루로 세운 것이다.

 실제로 2022년 인공지능를 부분 활용해 우수상을 받은 작가 아시자와 카모메는 "인공지능의 문장은 아이의 낙서와 같아서, 이를 토대로 그림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상상력”[2]이라고 했다. 2025년 아오노 케이시도 집필의 80%를 인공지능에게 맡긴 소설로 최종 심사에 오르는 성과를 보였으나, 그 역시 나머지 20%의 직접 수정 과정을 거쳐야 했다. 공모전의 필수 조건이기도 했지만, 작품의 완성도를 위한 필연적 개입이기도 했다. 2016년에는 "인공지능이 1차 심사를 통과했다"라는 사실 자체가 사건이었다면, 2022년에는 수상이 현실이 되었고, 2025년에는 집필의 80%를 인공지능이 담당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그렇다면 사람의 흔적, 즉 작가의 얼굴은 과연 어느 정도의 비중을 가져야 할까? 5%의 개입만으로 충분할까, 아니면 더 많은 인간성이 담보되어야 할까?

 

구단 리에의 실험: 95%의 인공지능, 5%의 인간

 

 이 지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실험을 감행한 이가 2024년 아쿠타카와상을 받은 구단 리에다. 그녀는 수상작 『도쿄도 동정탑』의 5%를 생성형 인공지능로 썼다고 밝힌 데 이어, 이듬해에는 광고대행사 하쿠호도의 잡지 『광고』의 의뢰로 “95%를 인공지능로 쓰는” 정반대의 실험에 나섰다. 4,000자 분량의 소설을 “인공지능 95%・인간 5%”의 비율로 집필하고, 생성 과정 전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조건이었다.

 리에는 인공지능에게 '크랏크(Cr인공지능Q)'라는 이름을 붙이고, 신체 없는 인공지능 고유의 관점으로 “사소설을 쓰라"고 주문한다. 인공지능 스스로 서술 주체가 되어 고유한 글쓰기를 수행하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4,000자 소설을 위해 무려 20만 자에 달하는 프롬프트가 작성되었고, 5일간 대화의 전 과정이 공개되었다.

 

“소설의 5%는 인공지능의 문장.” 제170회 아쿠타카와상 수상 기자회견에서의 발언으로 문단에 파장을 일으킨 구단 리에 출처: NHK 보도 화면 캡처

 

 

-   초반(1~2일), 주체성의 위임과 모방의 한계: 리에는 소설의 방향과 주제를 "크랏크 스스로 결정”하게 하고, 창작을 통한 인공지능의 내면 탐구를 유도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답변은 기존 데이터의 범주를 넘지 못한 채 "형식적”인 모방에 그친다.

-   중반(3~4일), 관념의 형상화와 서사 외연의 확장: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 장면으로 육화하는 문학적 투쟁이 이어진다. 리에는 인공지능의 예측 가능한 답변 체계를 깨뜨리기 위해 "인간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감정" 등을 물었고, 이를 통해 크랏크가 계산된 논리를 넘어 서사의 외연을 넓히도록 독려한다.

-   종반(5일), 현장성 주입과 5%의 결정적 완성: 마지막 단계에서 리에는 인간만이 포착할 수 있는 '현장성'을 주입하고, “최상의 시나리오”를 끌어내려 한다. 아울렛 인파 속에서 느낀 강렬한 에너지를 '그림자 비'라는 물리적 실체로 실감하고 서사를 마무리 짓는다.

 

 5일간의 실험 끝에 완성된 소설 『그림자 비』는 인간 감정의 잔여물이 물리적 입자가 되어 내린다는 독특한 세계관을 담고 있다. 감정이 정신적 현상이 아닌 물리적 실체로 변환되어 마침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절대적 특이점으로 진화하는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구단 리에 수상작 『도쿄도 동정탑』 한국어판 표지

 

 

5%의 본질: 계산 불가능한 인간의 자리

 

 리에는 이 실험을 통해 인공지능를 창작의 도구로 규정짓기에 이른다. 크랏크로부터 “인간의 지성을 훌쩍 뛰어넘는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았지만”, 창작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다양한 발상을 돕는 유용한 장치라는 점은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도달한 최종 결론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자리로 향한다. 소설의 95%를 인공지능로 대체할 수 있을지라도, 나머지 5%에는 인간만이 느끼는 "이치를 초월한 욕구",[3] 즉 근원적인 창작 충동이 남아 있으며 바로 거기에 창조성의 본질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나머지 5%의 개입—즉, 방향을 설정하고, 위화감을 조정하며,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인간의 의지가 작품의 ‘얼굴’을 결정한다는 확신을 얻은 것이다.

 실제 이를 뒷받침하듯 『그림자 비』를 읽은 한 기자는 리에가 직접 개입하고 책임진 5%의 영역이 "가장 빛난다"고 평했다. 리에는 그 구절을 특정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또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을 꼽는다면, 그것은 자신이 쓴 글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리에의 실험은 얼굴 없는 작가를 목표로 했던 기획 자체가 결국 독자의 인식 안에서 특정한 얼굴을 재구성해 내는 방식으로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인공지능가 비인간적 관점을 제공하고 서사의 구조적 논리를 확장했음에도, 창작의 특정 지점에서는 얼굴이라 불러도 좋을 인간적 흔적이 감지되는 독서 경험이 발생한 것이다.

 

하쿠호도 『광고』 웹사이트에 공개된 구단 리에의 인공지능 협업 소설 제작 로그(Log). 『그림자 비』. 출처: https://kohkoku.jp

 구단 리에의 실험은 생성형 인공지능라는 당대의 기술을 서사의 중심에 놓고, 전통적 문학 주체들이 마주해 온 질문들을 오늘의 조건 속에서 재가동한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인공지능를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 주체성의 범위와 책임을 어디까지 확장 또는 위임할 수 있는지를 실험적으로 드러낸 시도라 할 수 있다. 인공지능가 구문론적으로 완벽한 문장을 뱉어낼지라도, 그 문장에 삶의 무게와 책임이라는 의미론적 차원을 부여하는 것은 여전히, 그리고 당분간은 인간의 몫임을 증명한 것이다. 리에가 발견한 5%의 본질은 계산 가능한 영역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성의 최후 보루이자, 기술적 완벽함의 시대에 우리가 여전히 갈구하는 ‘진정성’의 자리가 아닐까.

 

 


 

  1. 2025년 10월 24일 부산 인문학 포럼에서 발표한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원고.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