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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평

[영화 비평] 관객이 서로를 부르는 극장— 모퉁이극장의 관객문화운동

by 웹진수이제 2026. 4. 22.

 

관객이 서로를 부르는 극장— 모퉁이극장의 관객문화운동

김현수(모퉁이극장 대표)


(좌)  모퉁이극장 슬로건 . (우) 중앙동 시절 모퉁이극장.

 한동안 영화를 보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이 훼손당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관객으로 존재하는 나 자신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때 모퉁이극장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라기보다, 관객으로 존재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 관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리,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아도 되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

 모퉁이극장은 처음부터 극장은 아니었다. 인문학 공부 모임 안에서 영화를 함께 보던 작은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무성영화 시대의 작품부터 고전영화까지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각자가 꺼내놓는 소감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각자의 삶에서 건너온 말들이었다. 영화는 스크린 위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의 삶 속으로 내려앉았다. 그때 나는 영화가 혼자만의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비추는 매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극장을 시작할 때, 한 장면을 자주 떠올렸다. 황무지 위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만들어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누군가는 철로를 놓고, 누군가는 집을 짓고, 누군가는 우물을 팠다. 그들은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지만, 결국 하나의 마을을 만들고 있었다. 실제로 극장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극장을 열기 전, 영화친구들은 영화관 입장권을 후원해 주었고, 식사를 챙겨주었고, 머물 곳을 마련해주었다. 극장은 혼자 만든 공간이 아니라, 이미 관객들의 도움 속에서 시작된 공간이었다.

 그러나 극장을 시작한 이후에도 공간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상영회가 없는 날이면 극장은 비어 있었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던 중 관객문화교실을 시작하게 되었다. 관객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영화를 말하는 자리였다. 처음에는 모두 조심스러워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말을 시작하자, 또 다른 사람이 말을 이었다. 누군가는 처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말했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관객은 단순히 영화를 보는 존재에서 영화를 자신의 언어로 살아내는 존재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관객토크는 그 경험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우리는 어려운 해석이 아니라, 영화를 보고 떠오른 가장 개인적인 감각을 말하도록 했다. “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같은 소박한 말들이 이어졌다. 그 말들은 짧았지만, 그 말을 꺼내는 관객의 떨리는 목소리와 망설이는 표정은 깊은 울림을 전했다. 누군가 울먹이며 마지막 장면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가 어디에서 멈추었고 무엇에 마음이 흔들렸는지를 함께 느끼게 되었다. 수려한 문장보다 끝내 다 말하지 못하고 멈추는 침묵 속에서 더 많은 것이 전달되었다. 그 순간 관객은 더 이상 침묵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자신의 언어를 가진 존재가 되었고, 동시에 서로의 감각을 건네받는 존재가 되었다.

 

(좌) 관객문화교실  . (우) 관객문화교실 종강파티 포스터

 

 이러한 경험은 관객영화제로 이어졌다. 관객이 직접 영화를 선택하고, 상영회를 만들고, 다른 관객을 초대했다. 극장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공간이 아니라, 관객이 서로를 부르는 공간이 되었다. 이 과정을 지나며 나는 모퉁이극장의 관객운동이 단순한 영화활동이 아니라, 영화를 삶으로 내려앉히기 위한 문화운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영화는 상영이 끝나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삶 속으로 옮겨가 다시 살아가기 시작했다.

 

모퉁이극장이 주관한 40계단 야외상영회

 

 

 그러나 이 과정은 언제나 균형을 필요로 했다. 우리는 쉽게 나만의 취향 속으로 숨어들 수 있었고,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만 영화를 소비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었다. 공동체의 어울림 속에서 그 분위기만을 즐기는 일도 가능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에 맞는 나의 기여가 필요했다. 내가 얻고 있는 만큼, 나 또한 무엇인가를 건네야 했다. 모퉁이극장의 관객운동은 그 균형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그것은 이기적인 관객으로 머무르지 않기 위한 하나의 실천이었고, 타인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기 위한 하나의 훈련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극장을 지속시키는 것은 많은 관객이 아니라 한 명의 관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와 있는 한 사람, 자신의 속도로 영화를 보고 극장과 관계를 맺는 사람, 그리고 어느 날 또 다른 누군가를 데려오는 사람. 극장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공동체가 목표가 아니라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명의 관객이 다른 한 명의 관객을 만나고, 그 관계가 이어질 때 공동체는 비로소 형성되었다.

 

 현재의 모퉁이극장

 

 

 관객들은 모였다가 흩어졌다. 그러나 흩어짐은 끝이 아니었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영화를 이어갔고, 또 다른 관객을 만났고, 때로는 다시 극장을 찾아왔다. 관객문화운동은 그렇게 점처럼 이어졌다. 한 명의 관객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다음 관객으로 이어지는 매개였다. 그래서 지금 모퉁이극장이 하고 있는 일은 공동체를 직접 만드는 일이 아니라, 한 명의 관객들을 응원하는 일이다. 한 사람이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돕고, 그 마음이 다시 이어지도록 기다리는 일이다.

 

(좌)  모퉁이극장의 콘텐츠 ‘관객 톱 텐’을 작성한 외국인들 . (우) 모퉁이극장 상영관 모습.

 

 지금 모퉁이극장에는 거창한 목표가 없다. 다만 이곳을 거쳐간 관객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한 번 더’ 영화를 이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단 한 번이라도, 단 한 해라도, 그 경험이 지속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관객문화운동은 많은 사람을 모으는 운동이 아니라,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자신의 경험을 건네는 과정이다. 모퉁이극장은 그 느리고 조용한 전달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