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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평

[영화 비평] 하얀 연기가 피어오를 때—<콘클라베>(2024)

by 웹진수이제 2026. 4. 22.

 

하얀 연기가 피어오를 때—<콘클라베>(2024)

이경희 (수이제)

 

  햇살 좋은 일요일, 밀양의 한 작은 성지를 찾았다. 길가에 낮은 꽃들과 큰 나무들이 낯선 손님을 반겼다. 낙동강이 큰 화폭처럼 시원하게 펼쳐졌고, 길을 오르니 소박한 성당이 나왔다. 안에서는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미사는 나를 과거로 소환했다.

 

  안개 같은 미래에 불안함을 느꼈던 이십 대. 신의 응답을 듣고 싶어 세례를 받고 매주 미사에 임했다. 하지만 기다렸던 신의 응답은 오지 않았고, 의심이 밀려왔다. 갈수록 가톨릭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어느 날부터인가 발길을 돌렸다.

 

영화 <콘클라베> 포스터. 출처: https://kstar.kbs.co.kr/

  내가 기억하는 가톨릭은 보수적인 종교였다. 그런데 영화 <콘클라베> 속에서 내 기억과 믿음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었다. 보수적인 제도의 심장부에서 가장 급진적인 진보의 장면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가톨릭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 과정을 따라간다. ‘콘클라베’는 라틴어인 ‘함께(cum)’와 ‘열쇠(clavis)’의 합성어인 ‘쿰 클라비스(cum clavis)’에서 유래하며, ‘쇠로 문을 잠근 방’을 의미한다.

 

겉으론 신의 뜻, 안으론 치열한 권력 다툼

 

   거장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 <천지창조>가 우뚝 솟아있는 시스티나 성당. 그 장엄한 내부. 붉은 수단을 입고 비레타를 쓴 추기경들이 하나둘씩 입장한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고, 누군가는 조용히 기도를 속삭인다. “모두 나가시오”라는 외침이 울려 퍼지며 성당 문이 무겁게 닫힌다.

  영화 속 콘클라베가 시작되는 장면이다. 교황이 선종하면 바티칸은 새 교황을 선출한다. 굳게 닫힌 시스티나 성당 안, 전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들은 투표를 거듭하게 된다. 투표가 끝날 때마다 성당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새 교황이 선출되지 못하면 검은 연기가, 선출되면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성당 바깥에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성스러운 흰 연기가 피어오르길 기다린다. 공정함을 믿는 바깥의 기대와 투표는 사뭇 달랐다. 투표에서는 정치적 욕망과 파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겉으로는 신의 뜻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치열한 권력 다툼 속에서 진보와 보수의 두 축이 팽팽한 긴장으로 달아오르며 갈등으로 얼룩진다.

 

자신의 이름을 적는 로렌스

출처: 나무위키.

 

  몇몇 추기경이 교황 후보로 거론되지만, 그중 일부는 과거 성 추문과 권력 다툼에 휘말려 있었다. 콘클라베를 관장하는 단장 로렌스. 욕망이 없는 공정한 얼굴을 한 그가 투표지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다. 침묵만이 가득한 성당 안에서 이름을 적어 내려가는 순간, 양심의 울림이 환청처럼 다가온다. 그것은 신념일까, 아니면 억눌려왔던 마지막 탐욕의 분출일까. 하얀 투표지 위로 번지는 로렌스의 고뇌는 성스러움과 세속의 경계가 얼마나 한 끗 차이인지 서늘하게 증명한다.

   로렌스가 투표함 앞에서 기도문을 읊고, 고개를 들어 천장에 있는 최후의 심판을 올려다본다. 투표함에 넣으려는 순간. 쾅! 쾅! 쾅! 성당 안으로 자살 폭탄이 날아들며 폭발하고, 콘클라베가 중단된다. 신의 의지가 개입한 것인가? 바깥 세계와 온전히 단절된 듯하지만, 외부와도 분리될 수 없는 듯하다.

 

가부장적 관행과 금기를 흔들다

 

  콘클라베 셋째 날. 성당 안으로 바람 소리와 맑은 새소리가 흘렀다. 예상치도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 교황으로 선출된 이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존재, 심지어 간성으로 태어난 이였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혹은 둘 다인 존재. ‘정상’이라 인정받지 못할 몸이 성스러움의 정점에 올랐다. 교황은 늘 남성이었기에 그 외의 성은 그 문밖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영화는 가톨릭의 절대적인 질서를 뒤집었다.

  영화 속 추기경들이 서로 의심하고 갈등 속에 빠지는 동안, 이 모든 균열과 선출 과정을 지켜보는 존재가 있다. 신의 대리인이라 자처하는 이들을 침묵 속에서 바라보는 수녀들이다. 특히 궂은 심부름을 해왔던 아그네스 수녀. 그녀는 굳게 닫혀있던 성 추문과 금전거래의 자물쇠를 열어 위선과 썩어빠진 부패의 증거를 드러내고 진실을 폭로한다. 누구도 내리기 힘든 선택이다. 권력을 쥔 자들이 오만과 위선에 허우적거릴 때 눈에 띄지 않는 이가 그 중심, 그 물결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맑은 희망이 피어오르는 순간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커튼이 열리며 어둡던 실내에 빛이 들어온다. 로렌스 추기경이 창밖을 내다본다. 하얀 옷을 입은 세 명의 수녀가 웃으면서 정면을 가로지른다. 밝은 빛의 균열 속으로….’ 성직자에게 순응하고 뒷길로 다니며 존재를 감추는 삶을 산 수녀들. 단순한 동선 변화가 아니었다. 기존 질서를 깨트린 것이다. 질서의 재편, 위계의 해체를 의미하기도 했다.

 

아기천사,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다

 

  영화 <콘클라베>는 질서를 내세우며 부당한 관행과 금기로 굳게 닫혀있는 세상의 문을 열었다. 그 닫힌 구조와 틀을 흔들어대는 급진적인 반란이었다. 믿음의 이름으로 오래된 규율을 강요했던 종교와 기득권의 세상. 그 거대한 세력에 대한 근원적인 저항의 분출이었다. 그동안 침묵을 강요당했던 약자와 소수자들이 인격체로 존중받을 권리를 부여하라는 불꽃을 품은 저항이었다.

  우리 아니 내가 만들어 세운 정상이라는 유리 벽. 그 속에 갇힌 내 진심에 대한 의심이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으면 나는 분노하고 발끈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선택한 영역이 아닌 소수자, 그들에 대해서 가슴 깊은 곳에서 수용하지 못하고 경계를 두고 있다. 영화는 내가 경계 밖의 존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인지 묻고 있었다.

 

출처: https://news.nate.com/

   새 교황이 선출되면서 모두가 기다리던 연기, 아기 천사의 나팔을 닮은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 연기는 새로운 세상을 알리는 선언문이다. 시민들의 큰 함성이 들려온다. 오랫동안 누려온 가부장의 세상이, 소외되고 경계에 선 자를 이제 따뜻하게 품을 수 있을까. 굳게 닫혀있던 보수적인 종교가 창을 열고 빛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약자와 소수자, 그들이 숨지 않고 고유한 개인으로 당당한 존엄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내 오랜 유리벽을 허물고 진정 낮은 자세로 신의 응답을 들을 수 있을까. 하얀 연기와 함성이 새로운 시작이자 질문으로 피어오른다.

 

  성지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 포근한 햇살이 마당을 비추고, 강바람은 부드럽다. 길가 작은 민들레가 옅게 흔들리고 나뭇가지 사이로 다정한 바람이 흐른다. 미사를 마친 신도들이 야외 마당에 모여 돌아가며 기도를 드리고 있다. 나도 함께 두 손을 모은다.

 

출처: https://www.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