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별이 되는 순간, E=MC2
장원 (농촌유토피아연구소)
지방 문제가 심각하다. 그 해결을 위해서는 지방이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더 유토피아가 되어야 한다. 아니 덜 디스토피아라도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지방이 도시보다 더 유토피아가 되기는커녕 덜 디스토피아로 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지금까지 지방 문제는 국가균형발전과 지역재생의 관점에서 주로 논의되어 왔고, 그에 따라 지난 수십 년간 정부가 엄청난 재정을 쏟아부었지만 다 실패로 돌아갔다. 그동안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천편일률적인 정책들을 기계적으로 그리고 하향적으로 제시하고 시행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기존의 지방 문제 해결책과는 전혀 다른 창조적 상상력으로 해결책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서울 태양계와 자잘한 행성도시들
지구에는 중력이 작용한다. 만유인력이 작용한다. 열역학 제2 법칙(엔트로피 법칙)이 있다. 항상성이라는 것도 있다. 인력도 있고 척력도 있다. 원심력이라고도 하는 관성도 있다. 이런 작용과 법칙 때문에 태양계에서 지구는 제 궤도를 지킬 수 있고 따라서 인간과 생물들이 어울려 살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흔히 지구를 지구별이라 부르는데 엄밀히 말해 지구는 별이 아니다. 태양계에서 별은 오직 태양 하나이다. 태양계에서 지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 천왕성은 별이 아니라 모두 행성(혹성)이고, 행성 주위를 돌고 있는 달을 비롯한 많은 천체들은 위성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은 태양별이고 인천은 화성이고 대전은 수성이고 대구는 목성이고 울산은 금성이고 부산은 토성이고 광주는 천왕성이다. 죄다 서울이라는 태양별에 의존하고 있으니 행성이라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한때는 부산별, 대구별, 광주별, 수원별, 이런 식으로 별이었을 때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별이 아니라 개똥벌레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거대한 블랙홀 서울계
아무튼 우리나라는 서울이라는 거대한 별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도시들이 행성처럼 돌고 있다. 수도 서울이라는 대한민국 유일의 별이 모든 행성과 그 행성에 딸린 위성까지 다 거느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른바 ‘서울계’인 것이다. 문제는 거느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 잡아먹고 있다는 데 있다. 수도 서울이 에너지, 자본, 인구, 일자리, 문화, 정치 등 지방의 모든 것들을 끌어들여, 날로 살찌고 날로 팽창하고 있다. 기존의 대중소 도시들을 종속시켜 아예 식민지화하고 있다.
태양은 적어도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블랙홀은 아니다. 그러나 서울은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다. 태양은 빛이라는 에너지를 지구에 무한 공급해 인간과 자연이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지구는 인력과 척력이 균형을 이루며 제 궤도를 돌고 있기에 태양으로 빨려 들어갈 일은 없다. 무엇이든 팽창하면 터지게 마련이다. 별이 팽창하면 폭발하여 초신성이 되듯, 결국은 폭발하고 쪼개지고 갈라지고 작아져서 소멸하게 된다. 서울이 지금 그런 길을 걷고 있다. 서울도 인구, 주거, 일자리, 교통, 범죄, 팬데믹, 환경오염 등의 문제로 종래에는 폭발하고 말겠지만, 지방은 지금 당장이 문제다.
5극3특이냐 소도시들의 자립역량이냐
지방 인구는 급격히 줄어들고, 각급 학교는 아예 없어지고, 경제는 활력을 잃었다. 이미 경기도와 인천 그리고 강원도와 충청도 일부는 수도권이다. 그러면 대전이나 울산 같은 나머지 행성형 도시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또 나머지 농산어촌형 군소도시들은 어떻게 될까? 지금 정부에서는 5극 3 특, 즉 8개의 초광역권 도시를 얘기하고 있는데 과연 이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수천 년 내려온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와 전통을 말살하지 않으면서, 중앙과 지방의 상생과 균형발전을 이루어내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대안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방의 대도시나 중소도시들이 서울이나 수도권에 흡수되지 않을 정도의 자립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지방 도시들의 밀도를 높이고 질량을 크게 하여 인력과 척력을 최대치로 만들어야 한다. 인력을 크게 하여 과포화 상태인 수도권 인구를 끌어들이는 동시에 척력을 키워 수도권에 빨려 들어가지 않게 해야 한다. 특히 지방 도시들은 서울이나 수도권 대도시들보다 면적은 넓으나, 그 밀도(인구, 주거, 일자리, 교육 등)와 질량(인적역량, 문화역량, 자치능력 등)은 상대적으로 아주 작아 사실상 빈 공간이나 다를 바 없다. 공동화 상태로 가까스로 존재하는 것이다.
생태방정식 E=MC2
지구에는 ‘확산과 평형의 법칙’도 있다. 잉크 한 방울을 물이 담긴 용기에 떨어뜨리면 즉시 퍼져나가, 결국에는 동등한 농도 즉 평형상태로 된다는 것이 확산과 평형의 법칙이다. 또 모든 에너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전기도 그렇고 물도 그렇다. 질서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 간다.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그리고 항상성의 법칙도 있다. 생명체 또는 비생명체가 외부의 변화나 스트레스를 내부적으로 조절하여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게 하는 성질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국가와 도시 그리고 인간 세상에서는 이런 지구의 자연법칙이 통하지 않는다. 아니 거꾸로 작용한다. 수도권은 갈수록 비대해지고, 지방은 하루가 다르게 쪼그라들고 있다. 도시와 지방의 경제적 불평등 현상도 극단으로 치닫고 있어, 이미 비가역적 상태에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 물론 국가가 세금을 걷어 부의 집중을 막고 분배의 정의를 실현해 보려 하지만 그야말로 중과부적이다. 기업이나 시민의 자발적 기부라는 것도 있긴 하지만 그 힘이 매우 약하다. 그래서 옛날에는 의적 홍길동이나 임꺽정이 탐욕스런 부자들이나 탐관오리들의 재물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이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항상성이나 확산 평형의 법칙 같은 자연법칙에 부합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정도의 파워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울 수 없다. 더구나 폭력을 행사하여 강제로 집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도 없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하면 된다. 위 방정식은 질량 M인 물체가 가진 에너지 E는 광속 C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을 차용하여 만들었다. 필자가 만든 생태경제력 방정식에서는 한 지역의 생태경제력(E)은 자연자원량(M)과 문화·공동체역량(C2)에 비례한다. 어떤 지역의 자연자원량은 거의 변하지 않으니 상수에 해당하고, 문화·공동체 역량은 키울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으니 변수에 해당한다. 문화·공동체 역량은 결국 인적 역량이다. 이 값이 커지면 E값은 제곱으로 커진다. 19세기 실용적 중도사상가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일찍이 자연과 문화와 교육이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세 요소라고 갈파한 바 있다. 자연은 M이고 문화와 교육은 C에 해당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관건은 C값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가이다.
문화·공동체 역량의 강화로
지방이나 농촌의 쇠퇴는 흔히 인구나 산업의 문제로만 설명되지만, 그 근저에는 문화·공동체 역량의 약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의 삶을 질적으로 고양시키는 문화 콘텐츠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공동체 정신마저 없으면, 대체 누가 지방에서 살려고 하겠는가? 지방을 살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건물을 짓고 도로를 내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할 것이 아니라, 그 지역 특성에 맞는 창조적 문화를 꽃피우고 우리 전통의 협업조직인 두레 공동체 등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류의 역량 강화는 교육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필자는 정부에서 매년 1조 원씩 전국 89개 소멸위기 지자체에 나눠주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의 심사위원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정말 모든 지자체가 예외 없이 건물과 도로 건설 등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사업제안서를 냈다. 창조적 콘텐츠를 생산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의 문화적 역량과 공동체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2025년에 발표한 문화체육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자동차로 문화시설에 접근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도시는 평균 9분, 시골은 평균 22분이었다. 이렇듯 문화시설이든 문화콘텐츠든 도시와 시골의 문화 격차는 매우 큰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렇게 문화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도시인들이 지방으로 이주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공동체 역량 역시 제도나 조직을 만드는 것만으로 생기지는 않는다. 인문학강좌, 주민자치회의, 사회적 협동조합과 같은 교육과 생활 민주주의의 경험이 축적될 때, 공동체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정부와 행정이 모든 것을 설계하고 지시하는 하향식 방식에서 벗어나, 주민이 스스로 실험하고 실패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주어야 한다. 이런 바탕 위에서 지역의 건강한 거버넌스(협치)가 만들어진다. 사실 우리나라의 광장 민주주의나 제도 민주주의는 세계적 수준이다. 그러나 이런 일상과 생활 속의 지역공동체 민주주의는 세계적 수준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지방의 활성화는 거창한 개발 프로젝트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이야기, 관계, 기억, 협력 같은 보이지 않는 자산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문화 역량은 삶을 해석하는 힘이고, 공동체 역량은 함께 살아가는 기술이다. 이 두 가지 역량이 커질 때 지방은 더 이상 낙후된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구현하는 ‘대안적 공간’이 될 수 있다. 문화적 즐거움과 공동체 연대감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문화와 공동체 역량을 제대로 키워 지방을 성공적으로 살려낸 국내외 두 곳의 사례가 있어 소개한다.
자랑스런 충남 홍성마을
첫 번째는 충남 홍성이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풀무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마을공동체 작업으로, 홍성은 지방의 가장 대표적 성공 모델이 되었다. 홍성군은 자치농정의 핵심주체로 친환경 농정발전 기획단을 설치하고, 홍순명, 주형로 선생을 비롯한 민간 지도자들은 마을공동체의 발전을 창의적으로 주도해 왔다. 홍성의 경우는 민간 주도의 거버넌스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잘 운영된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농촌 마을 만들기, 사회적 경제, 도농 교류, 귀농 귀촌 등을 주제로 많은 민간단체들이 모여 설립한 민민 협치기구인 (사)홍성지역 협력네트워크는, 중간 지원조직으로서 마을만들기 지원센터 등을 군에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홍성군 내에서도 마을공동체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온 홍동면은 친환경농업이나 오리농법의 시범 지역으로도 전국에 많이 알려져 있다. 또한 일소공도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도 잘 구축되어 있다. 2000년에는 전국 최초로 지역민과 전문가가 함께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홍동면 발전 백년대계를 만들었고, 지금은 전국의 많은 지자체들이 농촌지역 활성화 모델로 벤치마킹을 가는 곳이 되었다.

세계적 모델, 일본의 카미야마 마을

두 번째로는 카미야마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일본의 카미야마 마을이 농촌살리기의 세계적 모델이 된 것은 단순히 인구를 늘리는 데 급급하지 않고, 마을의 체질 자체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 성공의 중심에는 폐쇄성을 극복한 공동체 역량과 결핍을 가치로 바꾼 문화적 역량이 자리 잡고 있다. 카미야마의 공동체 역량은 ‘그린밸리’라는 민간조직의 헌신과 개방성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전형적인 농촌의 보수성을 깨고 마을을 외부인이 언제든 들어와 활동할 수 있는 개방적 플랫폼으로 만들었다.
특히 돋보이는 점은 단순히 이주민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 필요한 기능을 가진 인재를 직접 선택해 능동적으로 유치하는 전략이었다. 이는 이주민에게는 자아실현의 기회를, 마을에는 부족한 생활 인프라를 채워주는 상생의 결과를 낳았다. 또한 초고속 인터넷망의 조기 구축으로 도시의 정보기술 기업들을 유치해 농부와 엔지니어가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독특하고 활기찬 공동체 생태계를 구축했다.
문화적 측면에서 카미야마는 ‘창조적 인구 줄이기’라는 파격적 철학을 내세웠다. 인구감소를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인정하되, 그 과정을 얼마나 창의적이고 질적으로 풍요롭게 만들 것인가에 집중한 것이다. 그 핵심은 1999년부터 시작된 ‘마을의 예술가’ 프로그램이었다. 전 세계의 예술가들이 마을에 머물며 주민들과 소통하고 작품을 남기자, 평범했던 농촌 마을은 영감의 원천으로 탈바꿈했다. 지역주민들은 자신의 고향이 예술적 가치가 있는 곳임을 깨달으며 큰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문화적 역량은 낡은 창고를 세련된 작업실로, 버려진 민가를 감각적인 카페로 변모시켰다. 오래된 것의 현대적 탈바꿈이다. 결국, 카미야마는 살기 불편한 시골이 아니라 창의적 삶이 가능한 멋진 농촌이라는 강력한 문화적 브랜드를 갖게 된 것이다.
지방이 별이 되는 순간
결론적으로 작금의 지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천문적, 생태적, 인문적, 창조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정부 위주의 기계적이고 하향적 방식으로는 결코 지방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결국 홍성과 카미야마의 성공은 외부의 자본이나 정부의 대규모 토목사업이 아닌, 내부의 사람과 생각을 주민이 나서 창조적으로 바꾼 결과이다. 외부인을 환대하는 유연한 공동체 구조와 예술을 통해 마을의 가치를 재발견한 문화적 통찰력이 결합하여, 쇠퇴일로에 있던 지방을 되살려낸 것이다. C(문화·공동체역량)값을 최대로 키워 지방의 E(생태경제력)값을 극대화한 것이다. 지방이 살아야 도시도 산다. 지방생태계와 도시생태계의 역할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달라야 상보적이 될 수 있고 상생도 가능하다. 서울이 별이라면 지방도 별이어야 한다. 지방이 별이 되는 순간, 대한민국 전체가 환하게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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