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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집중 탐구

[작가 비평] 세상의 동력인 돈, 자본주의의 추한 문명- 발자크의 생애와 사상

by 웹진수이제 2026. 4. 22.

 

세상의 동력인 돈, 자본주의의 추한 문명- 발자크의 생애와 사상

정미숙 (문화사랑 백년어)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 시대, 시민사회의 도래

 

  18세기 영국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사회적·경제적 지배가 확립되고 시민사회가 도래하게 되었다. 또한,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만든 백과사전과 19세기 신문과 잡지를 포함한 출판업의 활성화로 인간의 지성은 세상의 질서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발자크는 19세기를 진보와 지성의 세기이자 이념적인 충돌과 투쟁의 시대라고 느꼈다.

  이러한 시대적 역동성을 꿰뚫어보고 그의 문학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하는 주요 개념이 바로 ‘근대성’이다. 다양한 의미망을 포괄하는 ‘근대성’ 개념을 가지고  『인간희극』으로 들어가보자. 역사적(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정치적(왕정국가에서 입헌군주주의로), 이념적(전체주의에서 자유주의로), 경제적(농업 경제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사회적(귀족사회에서 시민사회로), 문화적(대중예술, 시민문화)으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었다. 발자크 문학은 이러한 근대 문명이 어떻게 갈등하고, 변동하고 성립하는지 직접 체험하고, 치열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현대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발자크가 살았던 격변의 정치·경제·사회 상황

 

  발자크가 태어난 1799년은 나폴레옹이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를 일으킨 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특권 철폐를 요체로 하는 프랑스 최초의 공화정을 세웠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쿠데타는 공화정을 철폐하고 1인 황제 체제인 ‘제1제정’(1804~1814)을 연다. 나폴레옹 몰락 후 부르봉 왕가의 귀환으로 이루어진 ‘왕정복고’(1814~1830)는 대혁명 이후의 변화를 부정하고 귀족 정치를 부활하려다가 부르주아 계급과 젊은 세대의 7월 혁명으로 위기를 맞는다. 그 후 ‘7월 왕정’(1830~1848)을 낳는다.

  그러나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선출된 ‘시민 왕 루이필리프’는 상층 부르주아의 계급 이익에 복무하는 금권정치로 방향을 튼다. 이는 도시 노동자와 하층 부르주아 계급의 저항을 불러와 결국 1848년 ‘2월 혁명’으로 무너진다. 2월 혁명으로 두 번째 공화정이 수립된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과 부르주아 계급의 꿈과 현실의 거리는 아직 멀었다.

  이처럼 발자크가 통과한 프랑스의 19세기 전반은 봉건적 신분제도에 기초한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특권의 철폐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체제가 모색되는 시기였다. 경제적으로는 농업이 위축되고 근대적 생산양식인 산업 및 금융자본주의가 발흥하며, 시장경제 체제가 시작한 때이다. 운하와 철도같은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대규모 자본이 동원되고 은행이 급성장한다. 곧 돈이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었지만, 돈의 작동을 제어하는 장치는 없고 통화 불안이 일어나는 경제적 불안정성의 시기이기도 했다. 요컨대 삶의 패러다임이 송두리째 변화하는 격변기이다.

 

오노레 도미에(1830), <가르강튀아>.7월 왕정의 시민왕 루이 필리프가 서민들의 세금을 먹고 상층 부르주아 의 계급 이익에 복무하는 금권정치. 출처: http://search. naver. com

발자크의 생애와 『인간희극』 총서

 

  발자크는 1799년 프랑스 지방 투렌에서 태어나 1850년에 사망했다. 아버지는 농부였으나 나폴레옹 시절 군수물품을 담당하는 관리자에서 사업가로 변신하여 쁘띠 부르주아가 된다. 어머니는 쁘띠 부르주아 상인의 딸로 결혼 당시 부모 나이 차가 32살이었다. 발자크가 태어난 후 얼마 안 되어 유모 손에 4년간 맡겨진다. 7살에 집으로 데려왔다가 다시 기숙학교로 보낸다. 발자크는 어머니의 사랑 결핍에 평생 시달리게 된다. 발자크는 훗날 “나는 어머니를 가져 본 적이 없다”라고 할 정도로 애정결핍에 시달리며 연상의 귀족 여인들에게서 애정을 갈구한다.

  방돔 기숙학교는 규율이 엄격하였고 발자크는 늘 체벌을 당한다. 밤샘 독서와 열악한 생활환경으로 인해 병이 심각해지자 집에서 투르의 기숙학교 통학생으로 지낸다. 부모님이 원하시는 소르본대학 법학과에 진학과 동시에 공증인 사무실 서기, 변호사 사무실 서기로 근무하면서 세상 보는 눈을 날카롭게 갈고 닦아 나간다. 거대하게 파동치는 세상에서 원초적 충동의 비밀을 포착하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는 ‘나폴레옹이 칼로 이루지 못한 것을 내가 펜으로 이루리라’고 결심 한다. 20세에 부모님이 공증인이 되기를 권유했으나 발자크는 작가가 되기로 선언하고 『크롬웰』을 발표하나 실패한다. 위대한 작가를 꿈꾸던 그가 26세에 돌연 사업에 뛰어들어 경제적 자유와 독립을 얻고자 했다. 그러나 출판업, 인쇄업, 활자주조업이라는 세 가지 사업의 연이은 실패로 엄청난 빚만 졌다.

  작가로 성공한 이후에도 사치와 낭비, 부동산 투기와 잡지 경영의 실패 들로 그의 부채는 늘어만 갔다. 빚을 갚을 방법은 오로지 글쓰기였다. 그로부터 20년간 하루에 커피를 40잔 이상이나 과도하게 마시고 매일 16시간 글 쓰는 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혁명의 19세기에 문학으로 시대를 견인할 새로운 시대정신을 창조하겠다는 예술가의 사명감으로 단테의 『신곡』에 버금가는 『인간희극』으로 묶이는 소설들을 집필한다. 사실 『인간극』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인간희극』으로 번역되었다

  그는 살롱에서 귀족부인들과 많은 교류가 있었으나 첫사랑 베르니 부인과의 사랑을 진정한 사랑으로 여겼다. 그리고 18년간 편지교류를 하던 우크라이나 대부호인 한스카 부인의 남편이 죽자 50세에 그녀와 결혼을 하고 5개월 후 사망한다.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발자크는 전체적이며 집약적인 사실주의 시조로 독보적이다. 97편의 소설이 담긴 『인간희극』 총서는 등장인물은 2500여명에 달하며, 그 중 500여 명은 ‘인물 재등장’기법을 통해 여러 소설에 다시 등장한다. <풍속연구>, <철학연구>, <분석연구>로 구성된 『인간희극』은 하나의 거대한 사회를 이루고 역사,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예술, 법 들 19세기 프랑스의 모든 것이 담긴 소설로 역사서가 되어 사상가들의 연구대상이 된다.

  루카치는 그를 ‘위대한 사실주의자’로, 마르크스는 ‘19세기 최고의 작가’로, 엥겔스는 ‘사실주의의 승리’라고 격찬하며, 빅토르 위고는 ‘혁명의 작가’로 칭송을 한다.

 

  발자크의 정치관-계급을 초월한 혁명적 과두정치

 

  발자크는 『랑제 공작부인』에서 “평등은 분명 하나의 권리일 테지만 그 어떤 권력자도 그 권리를 사실로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평등은 환상임을 지적한 바 있다. 『시골 의사』에서도 “민중의 승리가 심각한 무질서”를 야기할 것임을 경고한 바 있다. 따라서 프랑스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는 고양된 정신과 재능을 가진 우월한 존재의 통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귀족들의 특권을 인정한다.

  하지만 발자크는 귀족들이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민에 대한 의무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랑제 공작부인』에서 “고귀한 혈통의 귀족이라 할지라도 국민이 그들에게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특권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고 시대의 흐름을 파악한다. 또한, 능력만 있으면 계급 상승을 할 수 있는 유연한 사회제도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이는 민중에게 야망의 길을 펴줌으로써 혁명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 역사관을 견지했던 그가 1832년 왕당파로 전향한 것도 국가의 분열과 그로 인한 무질서를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발자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정치 체제는 소수의 인물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과두정치다. 그런데 과두정치에 필요한 위대한 인물을 찾기 위해서는 계급을 초월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성을 유혹하는 발자크 풍자화. 출처: http://search. naver. com

세상의 동력인 돈은 추한 문명을 정착시킨다

 

  『인간희극』 전반에서 돈은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적 요소다. 『시골 의사』에는 근대산업자본의 축척과 돈의 위력, 부르주아 계급의 부상, 그로 인한 귀족계급의 세력 약화, 그리고 귀족과 부르주아 계급 사이의 대립 들 당시 변화하는 사회·경제적 구조와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때때로 돈은 심성을 타락시키기도 하고, 인간의 소외를 낳기도 하지만 모든 실존이 돈에 기반하고 있다. 돈은 사회를 조직하고 그것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동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평등 이념의 결과는 ‘가문 귀족’이 ‘돈의 귀족’으로 대체된 것이다. 평등사상은 사회 전반에 탐욕과 출세욕의 격류가 흐르도록 만들고, 예술을 허영심 충족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기념비적 예술은 사라지고 단조롭고 범용하며 권태롭고 추한 문명을 정착시킨다고 본다. 그 빈자리를 보며 발자크는 위대한 예술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한다.

 

 파리 공간의 유형을 권력의 이동으로 보다

 

  19세기 프랑스 풍속연구가 발자크에게 파리는 인격과 감정, 그리고 신체를 가지고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생명체이며 각각의 집들과 거리들은 고유의 계급적 특성을 지닌다. 생제르맹 구역에는 정통 귀족이 살고, 쇼세 당탱 구역에는 신흥 부르주아가 살며, 탕플가 근체의 마래 지구에는 가난한 수공업자들이 모여 산다.

  발자크의 소설에서 파리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페라귀스』의 비극은 주인공들이 공간의 규칙을 어김으로써 발생한다. 즉, 공간의 이동은 윤리 의식의 변화를 초래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순수하게 쥘 부인을 사랑했던 귀족 오귀스트는 진창 같은 더러운 길에서 그녀를 본 순간 몸이 뜨거워지면서 추악한 행위를 상상하는 것이다. 이처럼 파리는 변화의 한가운데 있고, 그와 더불어 권력도 움직인다. 뉘싱겐 남작의 저택에서 열린 무도회의 찬란함은 부르주아 계급이 경제뿐 아니라 정치권력까지도 차지하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장 베르 <부자의 출근길>. 19세기 파리에 다양한 계층. 출처: http://search.naver.com/

  

  신비주의적 실증주의자 및 유물론자

 

  발자크는 18세기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유물론자였으나 또한 1830년대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동물자기와 신비주의에 경도되었다. 『인간희극』 서문에서 종교적 교리와 사물의 유물론적 이해 사이에는 연속성이 존재한다고 본다. 초월적인 것에 대해서도 실증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루이 랑베르』에서 발자크의 과학적 탐구는 결국 신으로의 회귀를 그 목적으로 한다. 들뢰즈는 동물자기와 신비주의 사이에 아무런 실증적인 관계도 없다고 주장한다. 다만 최면 상태에서의 초자연적인 존재, 즉 신과의 소통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발자크는 내적 능력을 보여주는 최면의 일화를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과학적 설명으로 파악한다. 그는 우주와 인간과 과학을 통합하고자 했다. 그는 ‘신비주의적 실증주의자’였던 것이고 많은 작가들이 그의 생각에 동참했다.

  

 사회는 하나의 유기적 구조체계

 

  발자크는 『인간희극』이라는 가상의 현실을 구축하여 자기 시대의 정체를 파악하고자 시도했다. 또한, 기존의 기준이 해체되는 시대에 새로운 판단 기준이 절실히 요청됨을 인식했다. 그래서 그에게 소설가는 단순한 이야기꾼이 아니라 예언자, 통찰자, 현자, 철학자, 계몽주의자, 정신적 스승이라는, 지성의 힘으로 세상을 변혁하고자 한 예술가이다.

  그리하여 발자크가 통찰한 사회는 단순한 개인들의 집합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하나의 생명체로 인식되며, 그러한 관점이 『인간희극』 전체를 관통한다. 개인의 운명은 성격이나 도덕보다 계급, 돈 결혼, 상속, 출신, 풍토, 관습 같은 사회 구조에 의해 규정된다고 본다. 개인은 그 구조 속에서 만들어지고 다시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구조 전체의 체제 정비를 매우 중요하게 인식한 작가이다.

 

발자크가 본 자본주의 폐해의 출구

 

  발자크는 19세기 자본주의가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지속되는지를 가장 먼저 통찰한 작가이다. 그러나 발자크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명확한 출구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의 소설 속에서는 자본의 바깥에서 구원받는 인물은 없으며, 도덕과 사랑, 재능과 성실조차도 결국 자본의 논리에 흡수된다. 혁명도, 순수한 의지도, 개인의 선함도 구조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발자크가 남긴 것은 출구가 아니라 인식이다. 자본주의 시스템 밖으로 탈출 하는 것이 아니라 속지 않는 태도에 있다. 실패를 개인의 무능으로 돌리기보다, 이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발자크가 제시한 가능성이다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가 200년 전에 예견된 구조적 결과임을 인식하는 일이다. 이 인식은 자기비난을 멈추게 하고, 타인을 덜 적대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