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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마실] <루프랩 부산 2025>를 돌아보며

by 웹진수이제 2026. 2. 12.

 

<루프랩 부산 2025>를 돌아보며

 

조균래 (수이제) 

루프랩 부산 메인 포스터와 아트페어/포럼/전시 포스터 (출처 : 루프랩 부산)

부산시립미술관은 리노베이션, 예술이 일상 속으로 

작년부터 부산의 문화예술 공급망에 무시할 수 없는 공백이 하나 존재해 왔다. 지난 25년간 부산 미술 생태계의 중심으로 역할해 온 부산시립미술관이 23년 12월부터 건물 전체 리노베이션에 들어가 26년 9월경에야 재개관 예정이기 때문이다. 3년에 가까운 지역 거점 미술관의 부재가 점점 크게 느껴지고 있을 즈음, 놀랍고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그 이름마저 생소한 <루프랩 부산 2025>, 새로운 디지털 예술 축제라니. 

 

2025년 4월 15일, 그렇게 부산은 하나의 거대한 예술 실험실이 되었다. 두 달 반여의 기간 동안 무려 26군데의 문화기관과 공공장소에 전시와 이벤트가 펼쳐졌다. 수평적 공동체 기획, 하위문화와 상위문화, 영리와 비영리의 경계를 해체한 대안적 예술 축제를 목표로 하는 <루프랩 부산>은 세계 최대의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인 스페인 루프 바르셀로나를 모델로 하되, 독립적이고 수평적인 연대 실험이라는 것을 지향한다고 밝혀 의미가 크다. 

 

그런데 축제를 시작할 때의 떠들썩한 분위기와 달리 축제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의 후기나 평가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이 글은 이제 그 막을 완전히 내린 예술 축제, 루프랩 부산의 다양한 모습을 관람자의 시선으로 돌아보고 그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아시아 최대의 디지털·미디어 아트 플랫폼 축제

개막식은 부산시립미술관 야외조각 공원에서 5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루프랩 부산은 기술, 자연, 인간이 융합하는 미래를 대비하는 아시아 최초의 시간성 기반 디지털·미디어 아트 플랫폼으로 전시만이 아니라 포럼과 페어가 함께 개최되어 예술의 질적 심화와 시장으로의 확산까지 도모하는 종합적인 축제로 기획되었다. 

 

3일 동안 부산 그랜드 조선에서 진행된 포럼에서는 ‘미래미술관’을 주제로 세계 각국의 선도적인 미래형 미술관들이 협력해 새로운 예술적 기능과 기술 표준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 밖에도 예술과 금융경제를 논의하는 ‘예술과 자본 포럼’, 그리고 동아시아 영상예술 정체성을 탐구하는 ‘아시아 큐레이터스 포럼’ 등이 함께 개최되었다. 

 

아트페어 또한 동일한 곳에서 개최되었는데 많은 갤러리와 기관이 참여해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디지털 미디어 작품을 선보였다. 에스더 쉬퍼(독일), 갤러리 바오(프랑스), 두아르트 세퀘이라(포르투갈), 갤러리 바오(프랑스) 등의 세계적인 갤러리들이 참여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와 차세대 예술 애호가들을 위한 새로운 예술시장 형성의 가능성을 열어보였다. 

 

전시 공간 스케치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부산 전역의 각종 공공 및 민간 전시기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전시였을 것이다. 기술과 인간성의 연결을 탐구하는 루프랩 부산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전시들을 통해 관람객들은 비디오, 설치 미술, 가상 현실(VR), 퍼포먼스, AI 기반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현대 디지털 아트를 경험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부산이 디지털 창작의 중심지로 나아가는 실마리를 제공했다고도 불 수 있다. 부산 전역의 20여 곳에서 펼쳐진 연계 전시 중 인상적이었던 몇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부산시립미술관 <디지털 서브컬쳐: 모두가 창조자> 설치 전경

 

부산시립미술관 야외정원에서는 신매체 예술이 우리 삶에 침투하며 만들어내는 변화를 실험하는 전시 <디지털 서브컬쳐: 모두가 창조자>가 펼쳐졌다. 누구나 언제든 사이버 세상에 접속할 수 있는 포스트 디지털 시대에, 젊은 디지털 세대에게서 나타나는 새로운 문화인 ‘디지털 서브컬쳐’를 작품을 통해 조망해 보고자 한 시도로 ‘디지털 추상’, ‘다다의 빛’, ‘미러링 네이처’, ‘미러링 휴먼’ 등 네 개의 주제로 구성되었으며 앤디 토마스, 카를로스 배넌, 라이언 맥코이, 김현지, 서효정 등 45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참여하였다. 감각과 정보의 격자망으로 작동하는 스크린이 세로로 늘어선 가운데 오늘날 어떤 미적 가능성을 생성하고 또 해체하는지 그 실마리를 보여주는 작품들은 상당수 AI를 활용하여 제작되었다.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 있는 카린갤러리에서는 이집트 출신의 와엘 샤키와 한국의 문경원&전준호가 함께 하는 미디어아트 전시가 펼쳐졌다.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이집트관 대표작가로 선정되는 등 국제적인 주목을 받아온 와엘 샤키는 이번 전시에서 2016년 작품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Ⅲ>를 선보였다. 고대 이집트의 주요 유적지 아비도스 인근 도시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를 방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된 작품은 필름 네거티브 방식으로 반전된 푸른 색감의 영상을 통해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역사와 기록, 전설과 신화를 넘나드는 역사적 재구성을 통해 이집트와 중동의 서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보여주고 있었다. 

 

와엘 샤키,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Ⅲ> (카린 갤러리)

 

이웃한 조현화랑에서는 프랑스 현대 예술가 필립 파레노의 부산 첫 개인전이 개최됐다. 전시장 1층에서는 <귀머거리의 집>(2021)이 상영되었다. 프란시스코 고야가 살았던 집을 배경으로 공간과 이미지, 그리고 시간과의 관계를 탐구한 실험적인 작품은 초고속 카메라와 3D 기술을 활용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공간을 소리와 빛을 통해 현재로 불러왔다. 2층에는 깜빡이며 움직이는 작품 마키 시리즈가 설치되어 전시 공간 전체가 하나의 키네틱 작품으로 변모되었다. 작품은 문자나 특정 메시지가 담기지 않은 섬광의 찰나로만 구성되어 관객의 시선과 움직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사이키델릭한 풍경을 연출해낸다. 필립 파레노가 상상한 메타 세계가 시각적으로 구현되어 오늘의 현실을 표상하고 있다.

 

필립 파레노, <마키> 설치 전경 (조현화랑)

 

수영구에 자리한 <공간 힘>에서는 오민욱 작가의 전시 <빛의 해>가 열렸다. 전시는 각기 다른 시기에 한국의 김해와 대만의 타이난에서 살해된 세 인물의 죽음을 연결해 보여주고 있었다. 오민욱은 1956년 공산당과 연루되었다는 누명을 쓰고 타이난에서 처형된 딩야오타오와 스수이환의 흔적을 수년간 추적했다. 이전 작업 <유령의 해>에서는 김해 보도연맹 사건으로 학살된 김영명의 죽음에 주목한 바 있다. 이들의 죽음이 발생한 시각에 탄생한 빛을 상상하며 추적한 오민욱은 비디오를 구성하는 이미지, 그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공백을 통해 스러져간 한 인간의 목소리를 불러내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삼켜진 개인의 비극을 소환해냈다. 

 

와엘 샤키,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Ⅲ> (카린 갤러리)
정연두,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 전시장 전경 (국제갤러리)

F1963 내에 위치한 국제갤러리에서는 정연두의 개인전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이 펼쳐졌다. 사진, 조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정연두는 이번 전시에서 블루스 음악과 발효의 리듬을 교차하면서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살아내는 유머와 염원의 태도를 그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낸다. 전시장은 블루스 음악의 각 파트를 연주하는 다섯 음악가들을 중심으로 각각의 사연을 품은 느슨한 합주가 이어지며, 가시화되지 않지만 귀로 듣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삶의 역동과 생기가 음악를 통해 직접적으로 제시되었다. 

 

금정구의 디오티 미술관에서는 가상, 전쟁, 인간, 테크놀로지의 이면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이용백의 개인전 <Selected Works 1995-2025>가 펼쳐졌다. 그의 대표작 <브로큰 미러> 연작을 비롯해 <엔젤-솔저>, <블루 시리즈>, <지구는 어떤 힘으로 자전하는가?>, <기화하는 것들> 등 주요 작품을 선보였다. 현실과 가상의 융합, 전통과 현대의 조화,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통해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그의 작업은 동시대를 비추는 거울로서 미술과 기술 융합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용백, <Selected Works 1995-2025> 설치 전경 (DOT미술관)

미래 예술의 새로운 중심을 향하여 

〈루프랩 부산 2025〉는 리노베이션으로 인한 시립미술관의 공백을 메우는 단순한 임시방편이 결코 아니다. 공항, 시청, 박물관, 아파트, 호텔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문화 인프라 전반을 열린 무대로 전환하고, 예술가와 크리에이터, 전문가와 시민, 상업과 비상업의 영역을 교차시키며, 수평적 문화 공동체 모델을 실험한 것이다. 이는 민주적 예술 실천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 신선한 시도였다. 

 

그러므로 〈루프랩 부산〉이 보여준 가능성은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 도시의 문화 인프라를 무대로 삼은 그 실험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축적될 때, 비로소 지역사회와 깊이 호흡하는 진정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역 예술가들의 양성과 참여가 더욱 확대된다면, 이 페스티벌은 외부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화려한 이벤트를 넘어, 로컬의 창조적 에너지를 집약하는 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명확한 주제를 설정한다면, 행사 전체의 방향성은 더욱 또렷해지고, 관객에게도 동시대적 울림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루프랩 부산〉은 판매와 수익을 염두에 두고 상업적 성과를 의식해야 하는 아트페어의 성격보다는, 전시와 포럼을 중심으로 사유를 심화시키고 더 많은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장을 열었다는 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기술과 예술, 자연과 인간을 가로지르는 논의의 장이 본격적으로 마련되고 작동할 때, 이 페스티벌은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진정한 예술 담론을 생산하는 실험실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이 축적된다면, 〈루프랩 부산〉은 머지않아 명실상부한 지역성과 전지구성을 아우르는 의미 있는 미디어아트 축제로 도약할 것이며, 부산은 미래 예술의 새로운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