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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마실] 혼종적 매체와 새롭게 발견되는 영화- 《2025 부산현대미술관 시네미디어: 영화 이후》 전시를 보고

by 웹진수이제 2026. 4. 23.

 

혼종적 매체와 새롭게 발견되는 영화 -

《2025 부산현대미술관 시네미디어: 영화 이후》 전시를 보고

 

조균래 (수이제)

 

《2025 부산현대미술관 시네미디어: 영화 이후》 전시 포스터

1.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란 무엇일까? 우리는 누구나 영화를 알고 있고 영화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있지만 막상 영화가 무엇인지 정의하라고 하면 의외로 어려움을 느낀다.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정의하든 그 정의가 포섭할 수 없는 영화가 있기 때문이다. 저명한 분석 미학자이자 영화학자인 노엘 캐럴조차 영화를 필요충분조건으로 정의하지 못하고 4개의 필요조건으로 영화를 설명했을 뿐이다. 그러나 1895년 12월 28일 뤼미에르 형제가 파리의 그랑카페에서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일련의 짧은 영상들을 상영한 이래 인류가 종종 부르게 된 ‘영화’라는 이름의 어떤 것, “극장에 영화 보라 가자.”고 할 때의 바로 그 영화는 딱히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그때의 영화란 ‘어두운 공간에서, 스크린을 통해, 하나의 작품을, 시작부터 끝까지, 여러 명이 함께 관람하는 것’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영화에 대한 고전적 정의라고 해두자.

 

이러한 고전적 의미의 영화 개념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것은 디지털 기술이 영화에 도입되면서부터였다. 필름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은 흔히 해상도, 편집의 자유도, 시각 효과의 정교함과 같은 기술적 진보의 문제로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실제로 이 전환이 야기한 변화는 영화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을 더 이상 자명하게 유지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훨씬 근본적인 차원을 갖는다. 동일한 영화가 극장, 개인 장치, 스트리밍 플랫폼, 전시 공간 등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경험되며, 이 과정에서 ‘영화적 경험’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 역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넷플릭스, 디즈니, HBO 등 스트리밍 플랫폼의 확산은 영화 개념의 불안정성을 가속화하였다. 극장 상영을 전제로 한 상영 시간, 상영 스케줄, 관람 태도는 이제 영화 경험의 보편적 조건이 아니다. 중단·재개·배속·분할 시청과 같은 새로운 감상 방식이 일상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영화가 하나의 연속된 시간적 사건이라는 전통적 이해를 약화시키는 동시에, 영화와 텔레비전, 영화와 영상 콘텐츠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영화 이미지의 존재론적 지위에 대한 의문을 불러왔다. 또한 필름 기반 영화에서 카메라 이미지가 지니던 세계와의 물리적·지표적 관계도 디지털 이미지 환경에서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합성 이미지, 컴퓨터 그래픽, 인공지능 생성 영상은 더 이상 외부 세계의 기록을 전제로 하지 않으며, 이는 영화 이미지가 현실과 맺는 관계를 자명한 전제로 삼기 어렵게 만든다. 이처럼 영화를 둘러싼 고전적 이론들이 전반적인 해체의 위기에 맞서 새로운 감각적‧철학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등장한 포스트 시네마 담론은 디지털 전환 이후 영화 개념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중요한 이론적 시도로 평가할 만하다.

 

 

2. <영화 이후>, 미술관에서 만나는 영화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린 《2025 부산현대미술관 시네미디어: 영화 이후》(이하 《영화 이후》) 전시는 제목이 암시하듯 포스트 시네마 담론을 본격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즉 영화라는 매체가 오늘날 어떤 방식으로 변형되고 재구성되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전시로서, 특히 서로 다른 매체들이 교차하고 결합하는 혼종적 환경 속에서 영화가 어떻게 다시 발견되는가에 집중하고 있다. 더불어 이 전시는 영화적 이미지가 빛, 공간, 설치, 기억, 환경과 결합하는 복합적 감각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 공간 속에서 영화는 더 이상 스크린에 고정된 서사적 매체가 아니라, 공간 속에서 분산되고 재조합되는 감각적 사건으로 나타난다. 이때 영화는 단순히 재현의 장치가 아니라 관객의 지각과 기억을 조직하는 환경적 이미지로 변모한다.

 

전시의 출발점에 위치한 장-뤽 고다르의 〈영화사(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상징적으로 제시하는 작품이다. 〈영화사(들)〉은 제목 그대로 영화사를 글이 아닌 영화로 보여주고 있다. 역사상 어떤 매체가 글이 아닌 스스로의 형식으로 자신의 역사를 구성해서 보여준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이 작품은 예술사에서 대단히 희귀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이 작업이 영화사를 연대순으로 정리해서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만들어낸 기억과 환기의 구조인 몽타주 방식으로 영화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화면 속에서는 영화 장면, 역사적 기록, 문학 텍스트, 음악이 끊임없이 겹쳐지며 서로 다른 시간과 의미의 층위를 형성한다. 이러한 이미지의 충돌과 병치로 인해 관객 역시 영화사를 하나의 선형적 역사로 보지 않고 이미지들의 복합적 기억 구조로 바라보게 되며 영화라는 매체가 단순히 이야기와 장르의 체계가 아니라 방대한 이미지 저장고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기획자는 고다르의 작업을 전시장 맨 입구에 배치함으로써 영화 이후라는 문제 자체가 사실 영화 내부에서 이미 제기되어 왔음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고다르의 몽타주는 영화가 자기 자신의 역사와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편집하는 매체임을 탁월하게 드러내며, 전시의 전체 주제를 여는 하나의 문처럼 작동한다. 특이한 점은 가장 영화적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을 가장 영화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네 개의 스크린에서 제각각 돌아가는 영상들은 선형적 상영이라는 영화 고유의 관람 양식을 벗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람객들의 이동이 자유로운 미술관 공간의 특성상, 관객은 그 시작이 아닌 임의의 시점에 상영 중인 영화를 만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시작과 끝 그리고 상영 시간이라는 영화 고유의 시간성은 더 이상 무의미한 기준이 되어버린다. 관람객이 전시장에서 처음 마주하는 작품에서부터 영화 이후의 근원과 작동 방식을 강렬하게 체험할 수 있는 인상적인 배치였다.

 

장-뤽 고다르 <영화사(들)> 설치 전경

 

이어서 다가오는 저우 타오의 범상치 않은 다큐멘터리 <기지의 변두리>, <빅데이터의 축> 작업은 거대한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그의 화면에는 산업 시설, 자연 풍경, 인간의 노동과 움직임이 동시에 등장한다. 그러나 이 영상에서 인간은 중심적인 주체로 드러나기보다 거대한 환경 속에 흡수되는 존재처럼 보인다. 풍경은 종종 인간의 움직임보다 훨씬 더 압도적인 규모와 속도로 펼쳐진다. 이러한 이미지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과 환경의 관계가 어떻게 재구성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그의 영상은 영화적 프레임이 단순한 서사의 재현 장치가 아니라 특정한 환경적 감각을 만들어내는 장치임을 드러낸다. 영화적 이미지는 여기서 이야기 전달 수단이 아니라 환경적 경험을 생성하는 매체로 작동하는 듯하다.

 

저오 타우 다음으로는 한국 작가들의 작업이 이어진다. 먼저 듀오작가 뮌(김민선, 최문선)의 작업 <세트>는 이미지의 반복과 잔상을 통해 기억과 재현의 문제를 탐구한다. 화면 속 이미지 조각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사라지면서 관객의 지각 속에는 잔상이 남는다. 이 과정에서 이미지의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관객의 기억 속에서 계속 변형된다. 영화적 이미지는 여기서 기록된 현실이 아니라 지각과 기억의 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경험으로 나타난다. 권혜원의 설치 작업 <프로젝셔니스트>는 등대 구조를 활용하여 프로젝션 장치의 원리를 시각화한다. 빛이 투사되는 장치 자체가 조형적 구조로 드러나면서 영화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이 공간 속에서 재구성된다. 관객은 이미지가 어떻게 생성되고 투사되는지를 물리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변재규의 작업 <잔해를 위한 애가: 녹나무숲>은 폐허와 풍경을 통해 애도의 시간을 표현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명상적 상태를 영화적 형식으로 이해해 보려는 시도의 결과물이다. 채집된 낙엽들은 잎맥을 드러내기 위한 처리 과정을 거치고, 수제 필름에 코팅되었다. 이렇게 카메라 없이 만들어진 필름은 디지털 기술에 의해 재구성된 퍼포레이션(필름 영화의 운송시스템)에 의해 스크린에 투영된다. 이들은 원시 영화의 광학적 환경을 구성하며 물질의 그림자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그 결과 영상 속 공간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놓인 듯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폐허의 풍경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이 중첩된 시간의 층위를 만들어낸다. 이 작품에서 영화적 이미지는 사건을 전달하는 서사적 매체가 아니라 감정과 기억을 조직하는 시적 이미지의 장으로 작동한다.

 

변재규, <잔해를 위한 애가: 녹나무숲> 설치 전경. 사진출처 : 부산현대미술관 누리집

 

 

이어서 로사 바바와 타시타 딘의 작품이 등장하며 또 다른 방향의 영화적 경험을 제시한다. 두 작가는 디지털 이미지 환경 속에서도 아날로그 필름의 물질성을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작가들이다. 셀룰로이드 필름의 광학적 세계를 형성하는 요소들을 전시 공간에서 조형적으로 재구성해 온 로사 바바의 16밀리 설치 작품 <복사 노출 –시간은 빛줄기를 따라 흐른다>는 기록된 이미지의 순간을 시간을 초월한 빛의 세계로 확장한다. 필름 프로젝터와 빛, 그리고 공간 구조를 하나의 조형적 장치로 결합되고 프로젝터에서 나오는 빛과 기계적 소리는 단순한 영상 재생이 아니라 하나의 물질적 사건처럼 느껴진다. 관객은 영상을 보는 동시에 영화 장치가 작동하는 물리적 과정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나란히 설치된 타시타 딘의 작업 <바다에서 사라짐>, <파타 모르가나>, <테인마우스 일렉트론> 역시 필름의 시간성과 빛의 기록을 강조한다. 그의 영상은 종종 바다나 풍경 같은 자연 현상을 장시간 관찰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이미지는 서사적 사건보다 시간의 흐름 자체를 드러낸다. 필름 위에 기록되는 빛의 흔적은 마치 자연 현상을 직접 바라보는 듯한 감각을 만들어낸다. 전시 공간에서 이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빠르게 소비되는 디지털 이미지와는 다른 감각적 리듬을 만들어낸다.

 

전시 후반부에는 두 명의 대가가 포진해 있다. 구조주의 영화의 창시자인 마이클 스노우의 작업 <씨 유 레이터 / 오 르브와>는 영화적 이미지가 공간 속에서 어떻게 경험되는지를 탐구한다.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서사 영화와 달리 카메라의 움직임과 시각적 구조 자체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한 남자가 사무실을 나가기 위해 책상 앞 의자에서 일어나 비서와 인사를 나누고 문을 열고 나가기까지 불과 30초면 마무리되는 행동이 화면에서 무려 17분 30초로 늘어난다. 작가는 단순한 슬로우 모션 기법을 사용하여 직장의 전형적인 사무공간을 “약간 활성화된 베르메르”라고 묘사한 모습으로 변화시킨다. 전시 공간에서 관객은 스크린 앞에 고정된 관람자가 아니라 작품 주변을 이동하며 이미지를 바라보는 존재가 된다. 이미지는 형식적으로 완성된 일상적인 사건을 보여주지만, 우리가 응시하는 움직임의 느린 속도는 행동을 따라가는 시선에 의한 공간 변화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경험은 영화가 단일한 프레임의 예술이 아니라 공간 속에서 지각되는 움직임의 구조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스노우의 작업은 영화가 미술관이라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형태의 시각적 경험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마이클 스노우, <씨 유 레이터 / 오 르브와> 스틸컷

 

 

하룬 파로키의 작업 <그리피스 영화의 구조>는 영화의 구조 자체를 분석하는 시선을 제시한다. 그는 영화 장면을 반복적으로 재배열하고 분석하여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 왔던 영화적 서사가 특정한 편집 구조와 시각적 규칙에 의해 형성된 것임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그리피스의 영화 ⟨인톨러런스⟩(1916)에서 선택한 시퀀스로 만들어졌다. 남녀의 대화 장면을 사용하여 파로키는 이 쇼트들을 모니터 두 대로 재현하여 그리피스 영화의 구조 해체를 시도했다. 그의 작업은 영화적 내러티브가 자연스러운 표현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시각적 체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파로키의 작품은 영화적 이미지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미지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사유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전시 맥락 속에서 그의 작업은 영화라는 매체가 자기 자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지점을 드러낸다.

 

하룬 파로키, <그리피스 영화의 구조> 스틸 컷

 

 

 

3. 완전 영화를 향하여

 

이처럼 《영화 이후》 전시는 서로 다른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영화적 이미지가 다양한 매체 환경 속에서 어떻게 변형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시 공간에서 영화는 더 이상 단일한 스크린에 고정된 매체가 아니다. 그것은 설치, 빛, 건축적 구조, 기억, 환경과 결합하며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변화는 영화가 다른 매체와 결합하는 혼종적 환경 속에서 새롭게 발견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영화 이후》라는 제목은 영화의 소멸을 선언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영화가 다양한 매체들과 교차하고 확장되는 지점에서 새로운 형태로 다시 나타나고 있음을 가리킨다. 미술관이라는 전시 공간 속에서 영화는 더 이상 하나의 장르나 산업적 형식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빛과 공간, 설치와 영상 장치들이 서로 얽히며 구성되는 ‘움직이는 이미지’라는 복합적 생태계 속에서 새롭게 경험된다.

 

결국 이 전시는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영화는 어디로 이동했는가? 그리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일찍이 앙드레 바쟁은 영화가 역사적으로 반복해 온 하나의 요청, 즉 세계를 지배하거나 환원하지 않고 스스로 드러나게 하려는 지향성을 ‘완전 영화’라고 지칭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현실 세계를 가능한 한 충실하게 재현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근대 기술의 발명 이전부터 존재해 왔으며, 고대 이집트의 벽화나 바로크 시대의 회화에서도 이미 그러한 충동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는 이러한 오랜 열망이 기술적 조건과 결합하면서 비로소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바쟁에게 영화는 단순히 발명된 것이 아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잠재되어 있던 욕망이 기술의 발전을 통해 발견된 매체였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영화 이후’ 시대의 다양하고 파격적인 영화적 실험들 또한 단절이나 종말의 징후는 아닐 것이다. 변화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하는 그 오래된 욕망의 연장선 위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이후》 전시에 등장하는 여러 작업들은 바로 그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영화라는 매체가 새로운 환경 속에서 다시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영화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매체 환경 속에서 완전 영화라는 신화를 향해 이동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이동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영화라는 매체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