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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마실] 침례병원 공공화, 시민의 목소리로 묻다

by 웹진수이제 2026. 4. 23.

 

침례병원 공공화, 시민의 목소리로 묻다

김새롬 (인제대)

 

2024년 윤석열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은 전국적 의료대란으로 이어졌다. 인턴과 전공의들은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들은 단체 휴학에 나섰다. 나이 든 교수들이 빈자리를 메웠지만 의료 현장은 이전과 달라졌다. 이후 “사망률 증가는 없었다”는 연구가 발표되었지만 많은 시민의 체감과는 어긋났다. 분명한 것은 정부와 의료계의 충돌이 남긴 불안이 시민들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전공의들이 복귀한 뒤 정부는 진료량이 이전의 95% 수준으로 회복되었다며 의료체계가 안정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응급환자가 병상을 찾지 못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사망하고, 임산부는 분만 병상을 구하지 못해 먼 지역으로 이송되는 일이 공식적으로 의료대란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25년 가을, 소아신경과 전문의가 없다는 이유로 대학병원 이송이 거부된 고등학생 경련 환자가 사망한 사건은 응급실 ‘뺑뺑이’의 대표 사례였다. 한밤중 아이가 아파도 가까운 곳에서 치료받기 어려워 인근 도시까지 전화를 돌려야 하는 현실은 부산 시민에게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부산의 의료, 충분할까

모든 자원이 몰려 있는 서울에 비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부산의 사정은 좋은 편이다. 2025년 4분기 기준 부산의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의사는 8,513명이다. 전국 의사의 7.4%가 부산에 있다. 인구 천 명당 의사 수는 2.63명으로, 서울(3.69명)보다는 적지만 대구·광주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숫자만 본다면 부산이 특별히 의사가 부족한 도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림1. 지역별 인구 천 명당 의사 수  출처: 저자 직접 작성

 

 

 

병상 수 역시 마찬가지다. 인구 10만 명당 병상 수는 전국 평균이 560병상, 서울은 539 병상인데 부산은 815 병상에 이른다. 요양병원이 많은 영향도 있지만, 급성기 병상만 따로 보아도 부산은 전국 평균을 웃돈다. 겉으로 보면 부산은 의료 과잉에 가까운 도시다.

그런데 왜 시민들은 불안할까.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배치다. 부산의 의료기관과 의사 인력은 대부분 중부권에 집중되어 있다. 전공의 수련이 이루어지는 대학병원(부산대병원, 동아대병원, 고신대병원)은 모두 서구에 있고, 부산백병원은 부산진구에 있다. 해운대구에는 해운대백병원을 비롯한 종합병원이 자리 잡았지만, 서부권과 동부권의 북쪽 지역은 응급·중증 환자를 안정적으로 수용할 자원이 크게 부족하다.

정부는 5년마다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을 세우고 전국을 17개 시·도와 70개 중진료권으로 나누어 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한다. 부산은 서부권·중부권·동부권의 세 개 중진료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의료자원의 분포는 이 구획과 잘 맞지 않는다. 특정 지역에 기능이 집중되면서, 다른 지역은 구조적으로 취약해지는 형국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부산의 도시 성장 과정, 의과대학의 입지, 사학 중심 의료기관의 발전 역사 등 여러 요인이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의료라는 필수 인프라를 민간 투자에만 의존해 온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그 결과 부산의 공공의료 비중은 전국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국 병상 중 공공의료기관 병상이 9.8%를 차지하는 데 비해, 부산은 5.4%에 그친다. 서울조차 10.8%라는 점을 고려하면 부산의 공공의료 기반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문제는 단지 비율이 낮다는 데만 있지 않다. 공공병원이 충분하지 않다 보니, 중진료권마다 세 곳이 지정되어야 할 지역책임의료기관도 하나만 지정되어 있다(그림 2). 의료자원은 많지만, 책임을 지는 의료기관은 부족한 셈이다.

 

 

그림2 부산의 중진료권 구분과 책임의료기관    출처: 부산광역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 붉은색은 침례병원의 위치

 

 

금정구 침례병원의 폐쇄와 부산의 공공병원 만들기 운동

2017년 문을 닫은 금정구의 침례병원은 역시 중구 남포동에서 시작됐다. 1951년 미국 남침례교 한국선교회 재단이 지원하여 시작된 진료소는 영도구와 동구를 거쳐 1999년 금정구로 이전했고, 6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으로 성장했다. 한때 동부산을 대표하는 병원이었던 이곳은 확장 과정에서 쌓인 부채와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한 채 결국 파산했다.

 

 

그림3. 부산시 동구에 있던 왈레스 기념 침례병원 정경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하지만 침례병원은 신축·확장 과정에서 발생한 부채를 해소할 만큼 원활하게 운영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금정구로 이전 후 지속해서 적자난에 시달렸고, 경영 악화로 임금 체불이 발생하자 노사 간 갈등이 발생하기를 반복하다가 2017년 파산에 이른다. 금정구의 의료 공백 현실과 함께 침례병원 공공화 투쟁도 시작되었다. 

민선 7기 부산시장이 선출된 직후인 2018년, 시민사회는 부산시에 침례병원 부지를 매입해 공공병원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서부산의료원 설립과 함께 침례병원을 동부산 공공병원으로 활용하는 구상이 공공의료 벨트 계획에 포함되었다. 의료기관은 많지만 공공적 기능을 조정할 지배구조가 부족하다는 문제의식도 공유되었다.

지역 주민들의 움직임도 이어졌다. 2019년 5월 금정구에서는 부산의료원 금정분원 설립 추진 전담팀을 구성했고, 2021년에는 건강보험공단이 직접 운영하는 공공병원인 보험자 병원을 설립하자는 제안에 대하여 9천 명이 넘는 주민 서명을 모아 보건복지부에 전달했다. 

정치권의 약속 역시 반복되었다. 부산시장 선거와 대선 과정에서 침례병원 공공화는 여야를 막론한 공약으로 등장했다. 박형준 시장은 보험자 병원 설립을 공약했고, 윤석열 대통령 역시 부산 지역 공약에 침례병원 공공병원화를 포함시켰다. 금정구청장 선거에서도 침례병원 공공화는 당을 가리지 않고 모든 후보가 내세우는 약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례병원 공공화가 좀처럼 추진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산에 보험자 병원이 필요한 이유

지금까지의 경과를 돌아보면, 금정구 침례병원 공공화가 지연되는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중앙정부의 공공의료에 대한 의지와 투자 방향이 일관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서부산의료원 등 일부 지역 공공병원 설립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라는 제도적 돌파구를 열어 주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뒤 공공병원 신설은 사실상 멈추었고, 팬데믹 이후 적자에 시달린 공공병원에 대한 재정 지원조차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권에 따라 공공의료에 대한 태도는 다소 차이를 보이지만, 건강보험 재정을 직접 투입해 보험자 병원을 설립하는 적극적 정책은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본격적으로 추진된 적이 없다. 공공의료는 언제나 ‘필요하다’고 말해지지만, 정작 실행 단계에서는 뒷순위로 밀려왔다.

둘째, 박형준 부산시정의 모호한 태도와 애매한 추진  지다. 박형준 시장은 침례병원 공공병원화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2021년 침례병원 부지를 매입했다. 그러나 이후의 기획과 추진 과정은 더디고 모호했다. 보험자 병원을 설립하려면 건강보험과 관련한 정책을 심의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부산시가 제2보험자 병원 설립을 공식 건의한 것은 2023년 12월로, 위원회에서 논의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그마저도 금정구 주민들이 요구해 온 응급실을 포함한 급성기 병원이 아니라 300병상 규모의 회복기 병원이었다. 자료 미비를 이유로 보험자병원 설립 안건은 논의되지 못했고, 다음 해인 2024년 12월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부산시는 2025년 12월에 이르러서야 400병상 이상 종합병원으로 운영하면서 돌봄 기능을 강화하고, 병원 신축비 전액과 초기 운영 적자의 일부를 부담하겠다는 보다 전향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다 분명한 책임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그러나 이후 결정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거 이후에도 같은 의지가 유지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셋째, 중앙정부를 설득할 만한 논거가 충분히 축적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국 단위에서 보면 부산은 병원도, 의사도 상대적으로 많은 도시다. 2026년 1월 울산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대통령은 울산의료원 설립 필요성에 관한 질문에 “지자체장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공공병원이 필요하다면 중앙정부에 기대기보다 지자체가 정치적·재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러한 인식은 공공의료의 책무를 지방으로 돌리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동시에 널리 공유된 시각이기도 하다. 부산의 침례병원 문제 역시 같은 벽에 부딪혀 있다.

사실 숫자만 놓고 보면 부산은 부족한 도시가 아니다. 금정구 주민들은 지하철을 타고 동래구나 서구, 부산진구의 병원을 이용할 수 있고,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양산이나 해운대의 대형병원 응급실로 향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동부산 공공병원이 필요하다고 말하는가. 왜 시민들은 침례병원 공공화를 포기하지 않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이, 침례병원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의 기획과 상상을 먹고 자라는 동부산 공공병원 

파산 이후 8년, 2025년 11월 여전히 표류 중인 침례병원 공공화를 논의했던 토론회가 열렸다(그림 4). 이 토론회에서는 부산 시민의 건강 수준이 전국 최하위를 전전하고 있음에도 시가 이에 대해 적극 대응하지 않는 데에 대한 비판과 함께 시민들의 건강에 헌신할 수 있는 공공병원을 설립하기 위한 부산시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시민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됐다.

 

그림 4. 2025년 11월 부산시의회에서 진행된 침례병원 공공화 토론회 포스터   출처: 건강사회복지연대

 

 

보건의료노조 부산본부의 토론자는 팬데믹 시기 유일하게 코로나19 환자를 입원시키며 공공의 건강을 위해 헌신했던 공공의료에 수익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시의회의 경제성 논리를 비판했다. 돈을 버는 사업이 아니라 주민들의 건강과 생활을 책임지는 기본 인프라로 공공의료를 구상해 나가자는 시민사회의 제안이자 설득인 셈인데, 놀랍게도 부산시의 현직 관료와 정치인 중 아무도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결국 침례병원 공공화는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선택과 요구의 문제다. 부산보다 의료 접근성이 더 열악한 많은 지역에서 공공병원 설립을 위한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그곳의 시민들은 “병원이 부족하다”는 통계를 넘어서, “어떤 병원이 필요한가”를 묻고 있다.

부산의 시민들은 지금의 의료에 만족하고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시민들의 요구를 보다 구체적인 말과 목소리로 담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응급 상황에서 받아줄 병원이 없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도시, 비급여 진료비가 두렵지 않은 병원, 장애인·이주민·노인과 같은 소수자의 사정을 세심하게 살피는 차별 없는 병원, 기계적 치료를 넘어 돌봄을 제공하는 의료를 바라고 관철해 내야 한다.

부산의 보험자 병원 유치가 시민들의 상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이런 의미다. 부산 시민들이 바라는 의료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공공의 안전 인프라이며 이전과는 다른 더 좋은 의료의 거점으로 새로운 공공병원이 필요하다고 구체적으로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때 행정도 정치도 여기에 반응하여 움직일 수밖에 없다. 공공의료의 다른 미래를 기획하는 새로운 도전이 해양수도 부산에서 펼쳐지게 된다면 여기에 동참할 동료 시민들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우리가 공공의료에 대해 조금 더 많이 더 멀리 말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