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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서평] 작은 손과 약한 목소리가 남기는 균열

by 웹진수이제 2026. 2. 12.

 

작은 손과 약한 목소리가 남기는 균열 

-『이처럼 사소한 것들』(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다산책방 2023) 

 

한주희 (수이제) 

 

얼마 전, 아일랜드의 한 수녀원 부지에서 발굴 작업을 하던 사람들이 800구에 달하는 아이들의 시신을 발견했다. 뉴스 사진 속 건물은 이미 쓰러져가는 폐허였다. 벽의 회칠은 벗겨져 속살을 드러냈고, 창문은 깊은 지음, 어둠을 삼킨 채 서 있었다. 바람은 오래된 벽 사이를 스치며 먼지를 일으켰고, 그 먼지 속에 오래된 목소리들이 숨어 있는 듯했다. 그곳에는 이름도 남기지 못한 무덤들이 있었다. 아이들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고, 그들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 부지는 단순한 과거의 장소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를 향해 묻는 장소였다. “너는 알고 있는가? 너는 이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을 것인가?” 

 

그 순간 나는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떠올렸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묘사하는 세계는 바로 그런 장소, 그런 공기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마을에도 수녀원이 있고, 그 안에는 세상과 단절된 소녀들이 있다. 그 소 녀들은 사회가 ‘구원’이라는 이름으로 가둬둔 이들이고, 침묵의 속에서 잊힌 존재들이었다. 

 

겨울, 침묵, 그리고 문틈의 냉기 

이야기는 1980년대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빌 펄롱은 석 탄 배달을 하는 상인이다. 그는 아내와 다섯 딸과 함께 살며, 매일 이른 새벽부터 마을과 인근 지역을 돌며 석탄을 배달한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간다. 그날의 바람은 유난히 매서웠고, 하늘은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가 창고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밀려 나왔다. 하지만 그 냉기는 단순한 겨울의 냉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눌린 목소리, 오랫동안 발설되지 않은 비밀의 공기였다. 펄롱은 직감했다. 이 안에는 말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 안에서 그는 한 소녀를 발견한다. 소녀의 뺨은 창백했고, 눈은 깊게 꺼져 있었다. 손은 푸르게 얼어 있었고, 그 손이 움켜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묻는다. 

 

“너, 여기에 얼마나 있었니?” 

 

소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숨결만이 흰 김이 되어 공기 속에 흩어진다. 그 순간 펄롱은 깨달았다. 지금 돌아서면 이 아이는 사라지리라는 것을... 이 깨달음은 계산이나 계획이 아닌, 몸이 먼저 알아차린 반응이었다.

 

우리 모두 서로 연루되어 있음의 자각 

펄롱은 과거를 안다. 그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는 이미 세상에 없었고, 어머니는 부잣집에서 가정부로 일했다. 어머니가 일하던 그 집의 주인이 아니었다면, 그는 교육을 받지도 못하고 어쩌면 그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처럼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이 누군가의 선택과 호의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소녀가 과거의 ‘자신’일 수도 있었음을 생각한다. 

 

더 깊이, 그는 깨닫는다. 자신의 다섯 딸 역시 이런 자리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이 깨달음은 단순한 동정심을 넘어서는 감각이다. 그것은 연루됨의 자각, 즉 ‘나는 이 구조와 무관한 존재가 아니다’라는 통찰이다. 외면은 단순히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을 외면하는 일이 된다. 

 

펄롱은 결심한다. 그는 소녀를 데리고 나온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길 위에서,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수녀원의 벽은 여전히 서 있고, 그 안에는 다른 소녀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그는 안다. 구조는 그대로다. 그러나 그가 품에 안은 한 생명은 이제 그 구조의 숫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는 안다.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세계는 완전히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은 언젠가 또 다른 한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이렇게 이어지는 사슬은 보이지 않지만, 그것은 세상의 모든 거대한 변화의 씨앗이 된다. 

 

이것이 펄롱의 구원이 단순한 개인적 호의나 순간적인 연민을 넘어서는 이유다. 그것은 구조를 완전히 무너뜨리지 않더라도, 그 구조에 균열을 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침묵의 구조와 균열-윤리적 감응의 순간 

마을 사람들은 수녀원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안다. 그러나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 안전하다. 그 침묵은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한다. 그러나 그 질서란 피해자가 침묵하고 가해자가 침묵하며 방관자가 침묵하는 구조다. 펄롱은 그 구조를 무너뜨리진 못하지만, 균열을 낸다. 중요한 건 균열의 크기가 아니라, 균열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완벽하게 닫힌 구조는 영원히 지속될 수 있지만, 균열이 생긴 구조는 언젠가 무너질 가능성을 품는다. 여기서 키건은 질문한다. “중요한 건 구조가 얼마나 정교하고 집요한가가 아니다. 그 구조 안에서 감응하고, 윤리적으로 실천하려는 누군가가 존재할 수 있는가, 그것이 문제다.” 

 

펄롱이 소녀를 본 순간, 그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는 계산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감응했다. 이 감응은 정동적이다. 즉, 이성적 숙고보다 먼저, 그의 몸과 마음이 하나의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순간이다. 

 

이런 감응은 윤리적 선택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이념이나 법률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눈을 보고, 그 눈 속의 두려움과 절망을 느끼고, 그 감각을 외면하지 않는 것 - 그것이 구조를 흔드는 첫걸음이 된다.

 

세대를 잇는 구원- 결코 사소하지 않은 것 

펄롱은 소녀를 구하며, 동시에 자신의 딸들이 살아갈 세상을 지킨다.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세상을 만든다. 그가 소녀를 데리고 나온 일은, 단지 한 생명을 구한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마주할 세계의 윤리적 경계를 조금이라도 다른 방향으로 옮긴 일이다. 

 

이 점에서 펄롱의 선택은 ‘세대 간 윤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종종 미래 세대의 안전과 권리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추상적인 정치 구호로만 머무를 때가 많다. 그러나 펄롱은 그것을 구체적인 행위로 옮겼다. 

 

이 이야기의 제목처럼, 이 일은 사소해 보인다. 세계의 구조는 변하지 않고, 수녀원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세계는 완전히 변했다. 그 변화를 만들어낸 행동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여기서 ‘사소함’과 ‘중요함’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소함 속에서 중요

한 것이 나온다. 세상을 단번에 구원하는 거대한 사건보다, 오늘 눈앞의 한 생명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더 오래 남는 힘을 가진다.

 

지금도 반복되는 억압에 균열을 내는 사람들 

이 소설이 그리는 세계는 과거형이 아니다. 지금도 억압은 다른 이름으로 존재한다. 국경 지대의 난민 수용소, 비공식 보호시설, 가정폭력 속에서 고립된 사람들, 산업 현장의 이주노동자 숙소. ‘수녀원’은 형태를 바꾸어 어디에나 있다. 

 

중요한 건, 그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 반드시 권력자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펄롱처럼 평범한 사람도 그 문을 열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외면한다. 외면을 깨는 것은 특별한 훈련이 아니라, 순간의 감응을 따라가는 용기다. 

 

책을 덮고 나면, 펄롱의 선택은 우리에게 질문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알고 있는가? 우리는 외면하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는 작은 균열을 낼 수 있는가? 펄롱은 세계를 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다만 한 사람의 세계를 구했다. 그 한 사람은 언젠가 또 다른 하 사람을 구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어지는 사슬이 세상을 바꾼다. 완전히 무너뜨릴 수 없는 구조 앞에서도, 균열을 내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이 만드는 균열과 함께 언젠가 무너지는 시작이 될 것이다. 

 

기사 속 800구의 아이들은 이미 돌아올 수 없다. 그러나 펄롱이 구한 소녀는 그 숫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 사실이 그의 선택을 사소하지 않게 만든다. 정의는 모든 생명을 구하지 못할 때조차, 단 하나의 생명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