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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서평] 매혹의 끝 — 『울지 않는 달』을 읽고

by 웹진수이제 2026. 4. 23.

 

매혹의 끝 —『울지 않는 달』을 읽고

손아영(수이제)

 

울지 않는 달 표지. 출처: 교보문고

 

  이지은의 아동 소설 『울지 않는 달』(2025)에서 세 다른 개체가 만난다. 암컷 늑대 카나와 이름 없는 인간 아이, 하늘에서 떨어진 달이다. 카나는 새끼를 배고 있던 기간 동안 수컷 짝을 잃었다. 혼자서 새끼를 낳았지만 혼자서 기를 수는 없겠다고 판단한 카나는 그 새끼를 다른 암컷 늑대의 새끼들 사이에 두고 온다.

  한편, 달은 원래 하늘에 떠있는 존재였다. 땅 위에 살던 인간들이 달에게 매일 소원을 비는 통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달은 그 시끄러운 날들에 진저리치던 어느 날 땅으로 떨어졌다. 마지막 주인공인 아이는 어느 날 숲에 버려졌다. 이야기는 카나와 달이 버려진 아이를 만나고 그 아이를 보호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이어져 나간다. 그러나 아이를 지키고 키우는 과정에서 늑대 카나는 목숨을 희생해야 했고 땅 위에서 몸이 산산히 부서졌던 달은 죽는 대신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고 아이는 다른 사람들이 발견했다. 

 

  아동문학 평론가인 김지은은 아동문학이 “어른이 없는 사이 어린이를 다룬(돌본)” 문학이어야 한다고 말한다(『거짓말하는 어른』, 2016). 감시라 할지 돌봄이라 할지 애매한 어른들의 돌봄에서 아이가 벗어나서 혼자 있는 순간 아이를 키우고 자라게 하는 것이 아동문학이라는 말이겠다. 정말이지 어린 시절 읽었던 이야기는 어른이 되어 읽었던 것들과는 나를 사로잡는 그 정도가 완전히 다르다.

 

출처:   https://www.yes24.com/

 

  이야기 속 나무는 눈이 시리도록 초록이고 주인공의 모험은 심장을 옥죄어 올 만큼 위험하다. 어린이가 이야기를 읽는 행위는 그 감각과 체험이 지니는 의미의 측면에서 보면 어른의 독서와는 천지 차이이다. 감히 상상컨대, 어린이가 읽은 『울지 않는 달』은 어른인 내가 읽은 그것과는 엄청나게 다른 의미들을 발산해 낼 것이다. 카나의 희생은 필요했을까, 달의 몸은 왜 산산히 부서졌을까, 아이는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나아가 아이는 그 모든 희생을 당연시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숲속에 떨어진 아이를 다른 동물들이 돌보아 살려낸, 유명한 모글리의 이야기를 우리는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모글리와 동물들의 세계는 통일되어 있었다. 그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글리는 그저 몸의 형태가 다를 뿐 숲속의 동족이었다. 그래서 그가 숲으로 다시 돌아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모글리는 사람이기보다는 동물이었다. 이질성은 숲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세계에 있었다. 모글리는 외부에서 모험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누군가이다. 따라서 모험은 흥미진진하고 활기차다. 분노는 해결되고 슬픔도 사라진다.

  그러나 『울지 않는 달』의 세계는 다르다. 셋은 완전히 다른 개체이며 아이는 나머지 둘과 소통할 수 없다. 셋의 세계는 서로에게 너무나 이질적이다. 금방 새끼를 잃었기 때문에 또 다른 연약한 생명체를 만나 매혹당한 암컷 늑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돌과 신성으로 만들어진 달이 인간에게 매혹당하는 과정이 설득력 있기는 힘들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달 아래로 몰려들어 귀가 떨어져 나가라 자신에게 소원을 비는 인간들에게 진저리가 난 달이기에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그 둔덕이 가볍게 넘어가지는 이유는, 처음 달을 아이와 늑대에게 이끈 것이 그저 단순한 호기심이기 때문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만나 그것이 어떻게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강한 호기심 말이다.

 

 뒷다리에 난 찢긴 상처가 보였다. 인간 아이에게 가슴을 풀어놓는 늑대와 기어이 살아 내겠다며 짐승의 품을 파고드는 인간 아이. 달은 이 경이로운 광경을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달은 땅에서 솟아난 돌덩이처럼 붙박여 선 채 그 모습에 빠져들었다.
... 달은 카나와 아이를 밤새 바라봤다. 흡사 연구자의 모습이었다. 달은 이 순간을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짐승과 인간이 언제까지 이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지 지켜보고 싶었다. 그 끝을 보고 싶었다. 꼭 보아야만 했다. 달은 처음으로 존재의 이유 같은 것이 생겼다.
... 달은 하늘에서 달님이었던 자신에게 명령을 하는 늑대가 불쾌했다. 누군가 달에게 명령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달이 원하는 것을 지켜보려면 이들을 살아있게 해야 했다. 지금 당장 카나의 먹거리를 구할 수 있는 존재가 달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달은 무작정 숲으로 나섰다.

 

츨처: 네이버 블로그

 

  나는 어른이면서도, 무작정 숲으로 내딛는 달을 지켜본다. 마치 연구자가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고 그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관찰하듯이 짐승과 아이를 관찰하는 달의 모습을, 이 이야기가 허구의 아동문학인 것을 알면서도 그 끝을 반드시 알아내야겠다는 각오로 어른인 내가 지켜보고 있다. 카나가 죽고 달이 산산조각 나는 서사의 과정 동안 나는 아이처럼 조바심을 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그렇지 않으면 인간 아이가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늑대와 달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 소멸을 통해 구해진 인간 아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되었을 때 나는 그 새로운 시작에서 희망과 참담함을 동시에 느꼈다. 이질적인 세계가 만나 서로를 도모하며 모두 다 살리지 못하고 부분이 사라진다는 것을 마치 처음 알게 된 것처럼 마음이 서늘해졌다.

  이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생성해 나갈지는 알 수 없다. 유행처럼 출판되는 SF 소설들이 그려내는 세련된 낯섦에 이미 익숙해진 아이들이 고리타분한 신화처럼 자연이니, 숲이니, 달이니, 늑대니 하는 심상에 애초에 끌리기나 할지도 미지수이다. 그래서 그저 상상해 본다. 타자성이니 신유물론이니 철학 따위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가 이 책에 딱 한 번이라도 꼬드겨져 보기를.

  교실과 학원가에서 벗어나 깊은 원시의 숲에서 길을 잃고 차라리 아이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늑대를 수호하고 달을 사랑하기를. 아이가 구해지는 순간 안도하기보다는 그 생존을 위해 바쳐진 다른 존재들이 안타까워 울어보기를. 달과 늑대에게 매혹된 그 마음이 어른이 될 때까지 한 켠에 살아남아 그 아이를 그렇지 않았다면 아니었을 다른 어떤 어른으로 만들어 주기를. 매혹으로 다친 그 마음이 그 아이를 다른 세계로 조금 더 열어주기를.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본다.